상현 (上弦)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달을 살피며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둠을 이야기하고 어둠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둠이 가시는 순간의 여명을 말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혹여 존재를 담고 있다고 보자니 그 안에 여성이 있는 나희덕의 시. 여자로서의 존재를 거두며 사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고통스러운지 깜찍하게도 눈치채기 힘들게 행간 사이에 그림자만 드리우는 솜씨로 이렇게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