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억은 흐려져 간다

 

류시화

사랑의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 짓 첫눈 속에 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여기, 거기, 그리곤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멀리에

말해봐, 모든 것들 위해

아직도 생각을 하고 있는가

 

1980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안재찬이란 이름으로 발표된아침이란 시를 기억한다. 사이에 시인으로 번역가로 일하면서 인도여행집을 내고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거나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같은 시로 많은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시가 너무 쉽다고 여겼는지 문단의 높은자존심은 그를 문예지에 내주기 꺼리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자는 멀어져 가는 사랑이 안타까운 맑고 가벼운 시를 읽을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