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홍 수 희

 

사랑아, 너는 아느냐

내 가벼운 추락의 몸짓을

 

때로 나는 너를 위하여

온전한 소멸을 꿈꾸나니

 

내 없어 너에게 이르겠거늘

네 없어 나에게 이르겠거늘

 

네 안에 내가 들어서기 위하여

이리도 오랜 침묵이 필요하구나

 

내 안에 네가 살기 위하여

이리도 오랜 냉정(冷靜)이 필요하구나

 

시인은 빗물이 되어 사랑을 한다. 그 사랑이 참으로 어렵고 아프다. 이런 사랑을 만나기 전에 생불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빗물이고 네가 빗물이고 색이고 공이고…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고… 그러다 아무 것도 없는 곳, 이 시에서는 불가의 향내가 난다.

홍수희 시인은 1995년 ‘한국시’로 등단했고 ‘이육사 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