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 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룡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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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먹을 시속에 가시덤불처럼 얽힌 단어들의 싸늘함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것인가… 그러니까 불교식으로 사람이 죽어 윤회를 거쳐 다른 생명의 세포에재생된다고 하다면 좀 이해가 될까. 누가 인간이 유기적으로 배합된 물체라고 정의한다면 종교재판에 회부될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냥 짐승과 별반 다르지않으니까. 허수경의 시가 거북하다고 한다면 나와 허수경이 함께 사라져도 지구의 질량은 변함 없다는 사실을 지나치지 말자. 그리고 화두처럼 이 시를 좀봐주자. 허수경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