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가난한 애인들이 종이컵을 감싸 안는 겨울 밤에
성에 낀 창가에 별빛이 달려와 수북수북 쌓이는 집요한 밤에
넘기지 못한 페이지처럼 낯선 발자국들이 해안선 쪽으로 달려갈 때
내가 아는 一群의 바다는 공중 높이 펄럭이며
진물 마른 자리 마다 환한, 그 꽃핀 자리를 더듬더듬 읽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빛의 손들이
시간의 층계마다 수천 겹의 앙상한 나뭇잎들이 고요히 엎드려있는 공중에
바람과 얼음을 주제로 천만 번의 필사를 거치고 나서
마침내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한 때 그는 극진한 푸른빛의 일부였다
– 역할을 바꿔서 북어가 그 무엇이 되었다면, 푸른빛의 일부였을까. 푸른빛은 바다에서 나와서 몸 바꿔 어떤 사물이 되었을까. 낯선 발자국들은 해안선 쪽으로 달려가서 무엇을 만났을까. 생선이 말라서 북어가 되었다. 몸에 바람의 무늬를 새긴 북어는 환골탈태해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마침내…라고 쓴 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그 완성의 사이에 지나갔을까. 송종규 시인은 1989년 ‘심상’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