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들을 쓰다
오태환
필경사가 엄지와 검지에 힘을 모아 철필로 원지 위에 글씨를 쓰듯 이 별빛들을 쓰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별빛들은 이슬처럼 해쓱해지도록 저무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흑란 잎새처럼 쳐 있는 것도 또는 그 아린 냄새처럼 닥나무 한지에 배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어린 갈매빛 갈매빛의 계곡 물소리로 반짝 반짝 흐르는 것도 아니고 도장처럼 붉게 찍혀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별빛들은 반물모시 옷고름처럼 풀리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여리여리 눈부셔 잘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수평선 위에 뜬 흰 섬들을 바라보듯이 쳐다봐지지도 않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초등학교 때 연필을 깎아 치자열매빛 재활용지가 찢어지도록 꼭꼭 눌러 삐뚤빼뚤 글씨를 쓰듯이 그냥 별빛들을 아프게 아프게, 쓸 수밖에 없음을 지금 알겠다.
내가 늦은 소주에 푸르게 취해 그녀를 아프게 아프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저 녹청 기왓장 위 별빛들을 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지금 알겠다.
마지막 한줄을 쓰기 위해서 시인이 얼마나 우주를 배회하며 말을 갈고 닦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별빛을 무슨 수로 쓴단 말인가! 이러고 시인에게 시비를 걸면 시인은 아프게 아프게 웃어주지 않을까. 온 마음 탁 털어서 말과 말 사이에 장단도 맞춰주지 않을까. 오태환 시인은 1984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 동시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