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숙려
쪼그리고 앉아 앙증맞은 고 작은 손으로 인형 옷을 오려 내던 가위질 손을 잠시 놓고 “엄마, 밥이 이제 발까지 다 내려갔어.” 어여뻐라! 배가 고파졌다고 꼭 제처럼 말하는 것 좀 봐.
그러던 막내는 자라 디자이너가 되고 아장아장 외손녀가 말한다. “함미, 밥이 이제 발까지 다 내려갔어.” 대를 이어 나는 그 예쁜 말을 듣는다. 아이들은 바람처럼 자라서 어른이되고 그 모든 것이 내 것이었던 꽃 같던 시절도 지나 어둠이 내리는 텃밭에 앉아 상추를 뜯는다.
우리들 백세세대(白世世代)라지만 어언 칠십 고개를 바라보는 서글픈 노래 목젖을 적신다.
아니 벌써?
내려 놓아야지 욕심일랑.
어찌 살꼬, 아직도 캄캄히 남은 백 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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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을 키우면서 듣던 말을 손녀딸이 그대로 하는 걸 다시 듣는 할머니가 된 시인은 ‘백세세대’란 말이 주는 의미가 반갑지가 않나 보다. 아이들은 바람처럼 자라고, 꽃 같던 시절이 지나 어둠의 텃밭에 있는 모습으로 뜯는 것은 상추 뿐일까 아니면 살아온 자취들도 함께 일까 혹은 덧없음 일까…
강숙려 시인은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이며 현재 밴쿠버에 거주한다. 저서로는 ‘바람결에 스치듯’ 외 시집, 시조집, 수필집 등이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