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모서리를 읽다

 

백색

-모서리를 읽다

임봄

   둥근 앉은뱅이 밥상이 사라진 후부터 방안엔 점점 모서리가 생겨났다 네모난 식탁 모서리들을 쓰다듬는 달빛만 갈수록 둥글어졌다 밤이 깊어지면 누군가가 딱딱 이를 부딪치며 울었다울음은 어둠의 모서리에 부딪쳐 되돌아올 때 더 또렷이 존재를 드러냈다 불온한 혀끝에서 망을 보던 단어들이 조용히 밥 알갱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결별을 선언하지도 못했는데 모든 것이일시에 사라졌다 처마 밑에서 노란 주둥이를 벌리던 제비가 사라지고 마당을 기어가던 지렁이가 사라지고 무릎걸음으로 문턱을 넘어오던 말들이 사라졌다 슬픔은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환한 대낮이 어둠을 낳고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 이방인의 눈물이 가득한 방에서 우리는 각자 몸을 웅크리고 모서리에 등을 댄 채 잠이 든다

 

백색의 소제목으로 붙인 ‘모서리를 읽다’을 보자면 저만치 멀어져 가는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의 색깔인 백색의 터전에서 백의민족의 백색이 아직 숨을 쉬기는 하는걸까… 책상 모서리, 책의 모서리, 사무실 공간의 모서리에서 하나의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임봄은 2009 년 ‘애지’ 에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