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봄밤
송진권
가마솥 속 같은 밤인데요
늙은 산수유 몸 밖으로
어찌 저리 많은 꽃들을 밀어냈는지
정수리에서 발꿈치까지
온몸에 차조밥 같은 꽃들을 피웠는데요
배고프면 와서 한 숟갈 뜨고 가라고
숟가락 같은 상현달도 걸어놓았구요
건건이 하라고 그 아래
봄동 배추도 무더기 무더기 자랐는데요
생전에 손이 커서 인정 많고
뭘 해도 푸지던 할머니가
일구시던 텃밭 귀퉁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막 한상 차려낸 듯한데요
쳐다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요
이 푸진 밥상
혼자 받기가 뭣해서
꽃그늘 아래 서성이는데
훅 끼치는 할머니 살냄새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엉덩이를 툭툭 치는 할머니가
소복이 차려내신 밥상
그 누런 밥상에 스멀스멀
코흘리개 어린 내가
숟가락을 막 디미는데요
가마솥 속 같은 봄밤
뚜껑을 열자 김이 뽀얗게 오르는
배부른 봄밤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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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꽃나무 아래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던 어린 ‘나’를 다시 만나본다. 차조밥에 봄동 배추 겉절이가 갑자기 먹고 싶게 만드는 시를 보면서 저승에서 이승으로 손주 밥 차려주러 봄밤을 건너온 할머니의 기억이 살갑기도하다.
송진권 시인은 2004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해서 시집으로는 ‘자라는 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