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그늘

배롱나무 꽃그늘

                                                         윤은경

 

불현듯 열릴 것이네

석 달 열홀 기다려 아주 잠깐 열렸던, 다시는 열고 들어갈 길 없는 문, 그늘은 아무런 말이 없지만, 어쩌나 염천의 푸른 하늘 열꽃 툭툭 터지듯 내 피돌기는 더욱 빨라지는데, 여기 섰던 당신, 이글이글 타오르는 물길, 불길 지나쳐버렸네

이 나무 아래서 오래 벌서듯

다시 수없는 석 달 열흘을 기다린다면

수없는 허공이 생겨나고, 수없는 문들이 피어나고, 거리 눈 맞춘 내 어느 하루, 선연히 꽃빛 물든 당신, 붉디붉은 향기의 오라에 묶인다면

새끼손톱만한,

내 일생일대의 두근거림은, 다시

 

꽃은 그랬다. 석 달 열흘을 기다려 온 힘들 다해 자신을 다 피워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 그런데 그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래서 꽃나무는 다시 기다리기 시작했다…. 붉디붉은 향기의 오라에 묶이는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  일생일대의 두근거림을 위해, 잠시 머무는 것들의 빛나는 순간을 간직하는 윤은경 시인은 1996년 ‘시와 시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