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작(半作)

 

반작(半作)

권정일

 

마당을 쓸었다

텅 빈 마당 오동나무 긴 그림자

적빈이다

졸린 개의 컹 컹 몇 점 면면한 각도로 흩어지고

목줄 푼 마당은 쳐다보기도 고스란하다

오동꽃이 갈 볕에 그윽해지고 나서야 꽃으로 떨어질 때

운필인양

말간그늘을 휘호하는 오동

세상칡뿌리로 글을 써 탈속했다는 갈필 말고

우거진 세상 습습 찍어 관조했다는 습필 말고

갈필 습필 반작하여야 큰 오동에 큰

그늘

어떤 묵즙이 벼루 끝으로 꽃잎을 불러내었나

그늘 한가운데 꽃의 명문장을 걸어두느라 오동은 분주하다

휘장처럼

自己를 풀어 마당 가득 큰 뜻을 내려놓는

오동은

지는 것이 아니라 일필을 기다리는 큰 붓

부드러우나 단단한

육필붓끝을 따라가다가 옷매무새를 고친다

더디 끓는 늦가을 쇠죽연기의 일획이 장천이다

 

시를 쓰는 것이 아니고 시를 그리는 것은 아닌가… 따라가다 보니 먹물 뚝뚝 떨어진 자리에 꽃이 번지고 잎이 지는 풍경이 유려하다. 떨어지는 모든 것이 적요를 동반하니 선문처럼 빗금에던져지는 반작(半作)의 의미를 채우기 위해 한번 더 이 시를 읽는다.

권정일 시인은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마지막 주유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