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고정희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 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 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는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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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고정희 시인에게도 마흔 시절이 있었나보다. 불혹이란 불면 혹하고 날아간다고 누가 그랬을까. 잎이 지기 전에 가장 찬란한 감성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마흔의 상처란 또한 멍에인 것일까. 부처가 될 수 없는 사지를 버리고 떠난 시인은 사는 동안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이제 고요할까. 고정희 시인은 197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고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았으며 1991년 작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