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구대현
힘줄도 없이 한 점 살점도 없이
천형처럼 감추지도 못하는 알몸으로
겨우겨우 남의 살 속에 묻혀
침묵으로 견디고
끊임없이 구부러지고 부러지는 연명 속에서
화석처럼 남겨지는 생채기
이천 년 전 광야에서 메시아란 분도 만나고
수많은 장이들의 손으로
역사의 장 속에 활자처럼 박혀있다
스스로 한 걸음 떼지 못하는
마치 박히면 전봇대마냥
세월을 지고 기다릴 뿐이지만
어느날이면 나는 흔적도 없이
이 문명에서 떠날 것이다
철심으로의 소명을 마치고 나면
아니,
움직임 없는 자유에서
벗어나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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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못에 까지 눈길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 때 쓰인 못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힌… 이라고 수 없이 인용되지만, 그 ‘못‘이 앞에 나선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시인은 예리하다. 스스로 못에 이입되어 자유로운 날을 기약하는 구대현 시인은 2009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