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우물의 날들
이안
그날
당신은 비보다 꼭 한 걸음 늦었다
그래서 꼭 그만큼
걷지 못한 빨래가 비를 맞고 있었다
꼭 그만큼 시간이 늦어져서
꼭 그만큼의 생이 뒷걸음질로
밀리고 밀렸다
한치도 어긋하지 않는 어긋남에 들씌워서
아아, 자루 속의 당신
꼭 그만큼
되돌릴 수 없는 날들에 꽁꽁 갇혀
꼭 그만큼
잘못 간 길을 온몸으로
온몸이 물어뜯었으나
어긋난 대로 어긋남은 길을 만들고
목마른 날들의 우물을 파고
이리저리 비척비척 걸어가다, 이 모퉁이를 돌아야하는 데 그만 다른 모퉁이로 돌아 버렸다. 살다가 아주 깜박하는 순간 마치 함정에 빠진 것 같은 때가 있다면, 자루에 갇힌 한 마리 짐승처럼신음한 적이 있다면, 이 시가 독자를 대신하여 신음하는 것이다.
이안 시인은 1999년 ‘실천문학’ 으로 신인상을 받았고, 시집으로는 ‘목마른 우물의 날들’, ‘치워라 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