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여인숙
박완호
환한 봄밤이었다 막차를 놓치고 찾아든 여인숙, 판자때기 꽃무늬벽지로
엉성하게 나뉜 옆방과
천장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반반씩 나눠가진 형광등 불빛이 이쪽저쪽을
오락가락할 때, 나는
김수영을 읽거나 만나려면 조금 기다려야 했던 백석을 꿈꾸며 되지도
않는 시를 끄적거리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고 시팔, 속으로 투덜대며 원고지를 접고는 이내 곯아
떨어졌을 텐데, 잠결에 들려 온
옆방 여자가 내는 소리가 달밤의 목련꽃처럼 피어나는 걸 숨죽여 듣다가
그만 붉게 달아오른 꽃잎 하나를 흘리고 말았지
아침 수돗가에서 마주친 여자는 낯붉히며 세숫대야를 내 쪽으로 슬며시
밀어주는데 나는 괜히
간밤 그녀가 흘려 보낸 소리들이 내 방에 와선 탱탱하게 부풀었던 걸 들키
기라도 한 듯 덩달아 붉어져서는
내 쪽에 있던 비누를 가만히 그녀 쪽으로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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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흐트러지게 꽃봉우리 열리는 봄날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나 객지에서 하룻밤 묵어본 사람이라면 이 시의 풍경이 낯익을 것이다. 괜히 호젓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뒤척거리며 들고 간 시집을 읽기도하고… 봄에 괜시리 바람이 들어버린 탱탱하고 사랑스런 시 한편 만나본다. 박완호 시인은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