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빌지 마라

 

김시종

날이 지나도 꽃만 놓여 있다면

애도는 이제 그저 꽃일 뿐이다

(중략)

평온함만이 질서라면

질서는 이제 한낱 위축일 뿐이다

억울한 죽음은

떠돌아야 두려움이 된다

움푹 팬 눈구멍에 깃든 원한

원귀가 되어 나라에 넘쳐라

기억되는 기억이 있는 한

아아 기억이 있는 한

뒤집을 수 없는 반증은 깊은 기억 속의 것

감을 눈이 없는 죽은 자의 죽음이다

매장하지 마라 사람들아

명복을 빌지 마라

 

여기에 소개하는 김시종 시인의 시 ‘명복을 빌지 마라’ 는 전문이 아니다. 여기 저기 찾아 헤매다가 또 여기 저기서 조금씩 소개되어 있는 것을 누더기처럼 퍼서 가져왔다. 일본어로 시를 쓰는 재일시인인 그의 시들은 제대로 전문이 나와있지 않다. ‘명복을 빌지 마라’는 그가 출간한 ‘광주 시편’ 이란 제목의 시집 2부에 들어있다. 하지만 이 시집을 구하지 못해서 웹사이트를 찾아본 결과다. 이 시집은 1983년에 일본어로 출간되었고 2014년 12월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다시 출간되었다.  이 시를 알게 된 것은 4월12일 한겨례 신문에 기고된 후지이 다케시의 칼럼 때문이다. 세월호의 비극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에 대해 “4 월16일이 되면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희생자의 명복을 빌겠지만, 이 명복을 빈다는 행위는 희생자들을 저승으로 내보내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떨쳐버리려는 몸짓이 아닌가?” 라고 그는 묻는다. 그리고 그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김시종 시인의 시로 끝맺는다.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이중 하나만 없어도 비극은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 사건이다. 감히, 명복을 빌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