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동

 

유희경

아내는 반 홉 소주에 취했다 남편은 내내 토하는 아내를 업고 대문을 나서다 뒤를 돌아보았다 일없이 얌전히 놓인 세간의 고요

아내가 왜 울었는지 남편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남편은 미끄러지는 아내를 추스르며 빈 병이되었다

아내는 몰래 깨어 제 무게를 참고 있었다 이 온도가 남편의 것인지 밤의 것인지 모르겠어 이렇게 깜깜한 밤이 또 있을까 눈을 깜빡이다가 도로 잠들고

별이 떠 있었다 유월 바람이 불었다 지난 시간들, 구름이 되어 흘러갔다 가로등이 깜빡이고 누가 노래를 불렀다 그들을 뺀 나머지 것들이 조금 움직여개가 짖었다

그때 그게 전부 나였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편과 아내뿐이었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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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은 그동안 자기가 믿었던 ‘사랑’이란 것을 면목동 사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성찰하는 것으로 이 시는 마무리 된다. 술에 취해 울고불고한-사는 사정이 어땠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아내를 업은 남편은 아내가 마셔버린 빈 병이 되고 그 등 뒤에서 아내는 자신의 몸무게가 심한 짐이 되지 않도록 참고 있는 모습으로 둘은 더 이상 서로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으로 확신한다 시인이 진짜 시를 쓰기 시작한 때는.

유희경 시인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작란’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