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영
쓰고 남은 말을 쌓아두는 야적장이 있다면
나는 삼백육십오일 창고에 갇힐 거야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송전탑처럼 가시가 돋친
부러진 삽날처럼 뒹구는
쏙쏙 알맹이만 발라먹은 게 껍질 같은
레게머리처럼 가닥가닥 배배 비틀어 꼰
반쯤 타다가 말았거나 지금도 불타는
뇌관 시퍼렇게 터지지 않은
말을 수선하는 일로 식음을 전폐할 거야
날마다
용접봉에 불꽃 튀기며 말을 수선할 거야
알록달록하게 페인트칠도 하고
달랑달랑 예쁜 고리도 매달아준 뒤
이 재활용품 말을
내 나머지 인생 한쪽에 쌓아놓고
인심 좋게 나눠줄 거야
지지든지 볶든지 그대 인생에
약간의 영양가를 끼치면 좋겠다고
한번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다고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해놓고 후회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던가. 말 한마디에 천냥빚도 갚는다지만 말 한마디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이미 날아간 말을 잡아서 수선해보겠다고 꿈꾸고 있는 시인의 마음에 동감한다. 할 수만 있다면 왜 아니랴. 고치고 다듬어서 다른이와 스스로에게 보탬이 되는 말로 바꿀 수만 있다면….
한혜영 시인은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퓨즈가 나간 숲’으로 당선됐으면 그밖에도 시조, 동화, 장편소설 등을 발표하면 황성한 활동을 하는 재미교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