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대동여지도는 아니더라도
네 마음의 지도 한 장은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격랑의 높이를
등고선 몇 개로 대신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릴 수는 있을 것이다
수없이 밟았지만, 끝내 밟을 수 없던 그 땅의 이름들과
오래 울음 우는 네 여울목과
잎새 뒤 은밀하게 익어 가는 사과 한 알의 과수원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둥근 늪지와
마음의 갈피마다 숨겨져 있는 몇 개의 길을
혹은 네 마음의 기상도 한 장은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어디서 낮게 불어 오는지
네 슬픔과 기쁨은 어느 골짜기에서 만나는지
순한 양떼 구름 몰고 어느 황혼을 찾아가는지
네 눈동자에 드리운 장마 전선 언제나 걷히려는지
아마도 나는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의 끌로 새겨 넣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
그 속에서 자주 길 잃어 버리는 일
내가 그린 그림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없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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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안을 자꾸 들여다보며 그 깊이에 단어를 달아주는 나희덕은 천상 시인일 수밖에 없겠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어느 고원지대에서 떠나온 곳을 잊은 채 대지의 구석 구석을 쓰다듬고 있는 바람이 되어있는 것 같다. 길을 잃은 듯 어떠랴 내가 쳐놓은 경계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나희덕 시인은, 슬픔의 물줄기가 서로 만나 강을 이루고 넓게 흐를수록 더 깊게 숨어서 우는 건천이 되기를 바란다고 그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 끝머리에 적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