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는 참으로 강한 식물이다. 아무렇게나 놔두고 별로 돌보지 않아도 좀처럼 죽지 않고 무성하게 뻗어나간다. 막막한 벽 앞에서 기어오르는 담쟁이를 보며 시인은 엄마를 잃은 두 아이를 키우고 시를 썼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도종환 시인은 윤동주 문학대상, 백석 문학상, 공초 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