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
어둠 속에서 여인을 본 날이었다
놀랍게도
이불을 끌어안은 것처럼
빗소리를 바짝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낮술에 취해 비스듬히 베어진 남자가
물 묻은 가지를 짚은 채 여인 옆에 기대앉아 있었다
여인과 잠깐 눈이 마주친 동안
산볒꽃 잎이 날아왔다
빗소리 깔린 길
멀리 데려간 단 한 발자국만큼의 인연을
생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다 이미 울다 간 바 있는
봄, 사랑이 결정되기라도 하면
숙명이 책상다리를 하고 노랑 병아리 같은 것을 깔고 앉는
그런 전철이 있는 것 같다
서서히 기울며 지워지는
아둠은 그날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잎도 져 내리었다
한참 후
양쪽 발소리가 다른 여인이
입구 쪽으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젖은 꽃잎이 날아 내리며 입구를 간신히 비추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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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광주 상고를 나왔다. 나중에 국문학 박사가 되었지만 대부분은 상고 출신으로 살았다. 그의 시의 근간은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다. 이 시에 배어있는 짧은 인연의 행간 사이로 다리가 불편한 한 여인에 대한 연민의 끈이 닿아있다. 사랑은 산벗꽃처럼 부질없이 져버리니 술 취해 기대 바라보는 봄, 봄비, 어째서 아름다운 순간에도 늘 서러울까…
황학주 시인은 독자들을 통해서 알음 알음 알려진 시인으로 시집 ‘사람’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