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 읽는 소설 6 – 온 마을이 다 아는 기적 같은 아이

광열 아저씨네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언젠가 작은댁 할머니가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원래 이 마을이 순흥 안씨들이 많이 살잖니. 순흥 안씨들은 결국 한 할아버지에게서 나온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야. 너도 이 할머니 손녀다 그 말이야.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너를 안단다. 해일 교회 교인들이 이 마을에 거반 다잖아. 그러니 너를 모르는 사람은 이 마을서 몇 안 된단다. 네 속사정 다 알고 너 크는 걸 다 같이 봐주는 사람들이니 걱정 마라.

아 참 그리고, 이 할미가 노파심에서 하는 소린데 혹시라도 너를 누가 쫓아오거든 무조건 일단 도망쳐야 한다. 절대 모르는 사람은 쫓아가면 안 돼. 무조건 아무 집으로라도 들어가면 다 너를 도와줄 거야. 그러니 걱정 말고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너를 부르거든 무조건 도망가. 어른 있는 아무 집이라도 가면 된단다.

기동이네가 순흥 안씨 마을로 오래전에 이사 와서 터 잡기까지 고생도 많았어. 영감님 돌아가시고 고생하는 기동이 엄마 어려운 고비마다 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도와줬는지 몰라. 광열이네도 순흥 안씨는 아니잖아. 서씨네지. 서씨네는 육이오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내려왔다고 들었어. 광열 아저씨 아부지 엄마만 이북에서 내려와서 딱 광열이 하나만 낳고 먹고살려고 온갖 고생을 다 했다 대. 이 마을 처음 들어와서 아무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을 때 네 할아버지가 그렇게 많이 도와줬다고 하대. 나도 처음에 시집와서 그게 다 이상할 정도였어. 순흥 안씨도 아닌 집안이 어찌 저리 가깝게 지내고 무슨 때만 되면 찾아와 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고맙단 인살 할까 싶었지. 근데 그게 다 사연이 있더라고.

이 마을서 소 수 십 마리 키우고 우유 짜는 일 하고 집도 있고 밭도 있고 얼마나 잘 사나. 그게 다 네 할아버지가 피난 내려온 첫날부터 오갈 데 없는걸 거둬줬기 때문에 시작된 거야. 그래서 네 할아버지라면 광열이네 엄마 아부지가 자다가도 달려오는 거고. 은혜를 아는 따뜻하고 도리 있는 사람들이지. 이 할미가 주책이다. 아직 아인데 현아 너한테 별 얘길 다 했다.

외할머니도 이런 얘기는 너한테 못 했을 거야. 속으로만 앓고 곯지. 네 엄마 그 다 죽어가던 걸 너하고 같이 데려오던 그날부터 외할머니 속이 속이 아닐 거야. 현아 너 그 갓난 아를 데려왔는데 세상에 뼈만 앙상하니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고기 한 근도 안 되겄더라. 그때는 무슨 병원이 있나 이 시골서 뭘 알아야지. 네가 그리 문제 갖고 태어난 지도 몇 년 지나서 알았다.

무슨 아가 세 돌 지나도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 한 발 떼다 콕 고꾸라지고 한 발 떼다 콕 옆으로 쓰러지고. 네가 몸에 중심이 안 잡혀서 그때부터 좀 걷는 게 그리됐다. 그렇게 잘 걷지도 못하는 너를 새벽마다 새벽 기도 데리고 다니면서 네 외할머니가 엄청 가슴 치며 기도했다. 그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네가 때가 되었는지 한 네 돌쯤 되니 그제사 조금씩 걷더라.

그때 우리 다 얼마나 좋아했다고. 이 마을 사람들 다 네가 기적이라고 했다. 네 외할아버지가 해일 교회 짓고 한 거 다 아는데 교회서도 너를 모르면 안 되지. 논농사도 짓지만 옛날부터 목수 일하는 기술자라 교회도 그리 크게 잘 지었다. 해일 교회 짓다가 지붕에서 떨어져서 큰일 났다 했을 때도 네 할아버지는 살았다. 당신 말로는 그때 구름 위에 떨어지는 것같이 하나도 안 아팠단다. 그러니 그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하나도 안 다치고 네 외할아버지도 좌우지간 기적인 거다. 네 외할아버지도 기적 너도 기적이다.

네 외할아버지 집만 이 마을에서 시멘트로 지은 집 아니냐. 옥상 위에 옥상이 또 하나 더 있고. 이런 집이 세상에 어디 있나. 네 할아버지 집 아니었으면 우리들 다 고추 농사도 못 짓고 고춧가루도 못 내니 김치도 못 담가 먹는다. 그 넓은 옥상에다 고추를 쫙 펼쳐 놓고 햇빛에 바짝바짝 말릴 수 있는 호사를 네 할아버지 집 아니면 어디서 누리나. 우리도 감사, 너도 감사해야 한다.

네 외할머니가 말도 못 하게 울며 불며 가슴 다 태우면서 너 이만큼 키웠다. 모르긴 해도 너 엄마보다 널 더 사랑할 거다. 손주가 그리 특별하다. 세상에 모든 할머니한테 손자 손녀가 하늘의 별과 같다. 뚝 따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면 싶고, 그래도 하늘에서 반짝반짝 제 몫을 해야 별이지  싶어 애타고 어쩔 줄 모르겠는 게 그게 손주다. 네 외할머니한테는 현아 네가 별이다. 아이고 하기야 너를 하늘에 해 보다도 달보다도 별보다도 더 끔찍이 생각하고 키운 네 외할머니가 이런 얘길 어찌해 주겠나. 네 가슴 아플까 봐 못하지. 하나 건너 이 할미도 이리 가슴이 아린데 형님이 너한테 네 엄마 얘기를 어찌해 주고 네 그 거시기 얘기를 어찌해 주겠나.

내가 하다 보니 주책맞게 길어졌다. 이 마을서 너 모르는 사람 없고 너 엄마 모르는 사람 없다. 네가 기적인 거는 이 마을 해일 교회가 다 안다. 네가 기적인 거는 아마 여서 오래 산 멍뭉이도 알 거다. 암만 하늘이 아실 거다. 당신이 그리하셨으니 아시겠지. 그래야지.

오늘 어째 풀이 죽어서 어깨가 축 처져 걷는 게 이 할미 보기에 그거 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했다. 내 말 듣고 속상한 거 있으면 툴툴 털고. 아무 때나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할미한테 오고. 복숭아 따 놓은 거 와서 좀 가져가라. 혼자서 라면 끓여 먹지 말고 밥 같이 먹게 올라오고. 꼭 알았지! 할미가 숟가락 하나 더 놓고 기다린다!”

작은댁 할머니 말씀을 가끔씩 떠올린다. 그러면 마치 이 마을 사람들이 전부 한식구 같아서 기분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이 마음 사람들이 다 가족이라면 엄마 생각이 나더라도 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꼭 오늘같이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니 웃음소리도 더 크게 들릴 거다. 그럼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질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식구들 웃음소리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추석 같은 집이면 엄마가 늦게 오고 빨리 가도 눈물이 나진 않을 테잖나.

민소하
국어국문학 전공후 등단, 작사가 구성작가 신문기자 등 글과 함께 살다 몬트리올로 이주했어요.
웨스트 아일랜드 거주 11년 차, 네 아이들의 육아맘으로 틈내어 글쓰기를 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 민소하의 소설&에세이 SO 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