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 읽는 소설 2 – 여섯 송이 꽃들의 뜨거운 안녕

2

여섯 송이 꽃들의 뜨거운 안녕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주려고 메이플 시럽을 캐리어 가득 채워 넣었다. 마음이 더 복잡해지고 나도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 집 앞으로 택시를 불러 공항까지 가기로 했다. 악몽 같은 전화를 받은 뒤 왼쪽 눈의 시력검사 등 필요한 검진 결과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다 오늘에야 비행기를 탄다.

“엄마 잘 갔다 와.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빨리 집에 와. 밥 잘 먹고 학교 잘 가고 아빠랑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을게. 매일 영상통화해야 해. 사랑해.”

큰딸이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을 닦고는 엄마 옆구리와 등 뒤까지 두 팔로 깍지 껴 꼭 안는다.

작은딸은 엄마와 언니를 보고 벌써 눈물샘이 터지고 만다.

“엄마… 빨리 집에 와. 보고 싶어. 학교 잘 다니고 밥도 잘 먹을게. 동생이랑 안 싸울게. 엄마 빨리 갔다 와. 사랑해. 엄마 빨리 와.”

작은딸이 엄마에게 와락 안긴다.

그렇게 세 사람은 포개어져 마치 한 송이 꽃잎처럼 한 몸처럼 오래 붙어 있다.

셋째 딸과 넷째 딸이 새벽잠에서 깼고 비몽사몽간에 실눈을 뜬 채 셋째딸이 엄마를 배웅한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전화해요. 엄마 보고 싶겠다. 엄마 사랑해요.”

아직 잠이 덜 깬 셋째가 고마울 뿐이다. 안 그러면 지금쯤 돌고래 소리로 울고불고 집안에 번개가 칠 뻔했다. 넷째 딸은 아빠 품에 안겨 있다.

“아기도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잘 갔다 와. 엄마 사랑해. 엄마 꼭 안아주세요.”

준호가 막내를 내 품으로 보낸다.

“엄마… 엄마가 빨리 갔다 올게요. 미안해 울 아기. 사랑해. 엄마가 미안해. 울 아가 사랑해.”

그러자 갑자기 막내딸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엄마! 눈 아야? 눈 아야? 엄마?”

막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살짝 놀랐다. 아직 엄마가 아픈 걸 모를 줄 알았는데 요 꼬마 공주도 다 아는 모양이다. 아마 엄마 눈이 아프다고 언니들에게 들었거나 아빠에게 들은 것 같다.

“으응. 엄마 눈이 아야 해. 이쪽 눈이 아야 해.”

그랬더니 뜻밖에도 막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이렇다.

“엄마 눈 아야? 이쪽 눈 아야? 으으음…”

막내는 금방 눈물이라도 또르르 흘릴 것 같은 눈빛이더니 내 바로 코앞까지 바짝 다가온다. 너무 가까이까지 막내가 얼굴을 들이밀어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생각지도 않은 뽀뽀를 몇 번이나 하고 또 해 준다. 아직 불편감을 느끼고 있는 나의 왼쪽 눈 위에다.

내 눈 위로 막내딸의 입술이 쪽쪽 소리를 내며 계속 닿고 닿는다. 너무나 놀라고 기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또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행복 따뜻함 감사함이 가슴에 밀려든다.

내가 네 아이들을 키우며 늘 한결같이 해 오던 습관이 있다.

“엄마! 나 여기 아파! 이거 봐! 여기 피났어!” 라기에 보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피부 위에 먼지처럼 작게 빠알간 게 보일락 말락 하는 것이다. “그렇구나! 여기 피 나서 아프겠다! 알겠어! 엄마가 안 아프게 해 줄게!”라며 발등 위 티도 안 나는 빨간 것, 거기에 뽀뽀를 쪽 소리 나게 해 준다.

아이들은 엄마인 나의 뽀뽀를 받고는 웃음 짓는다. 그 웃음을 보는 게 참 좋다.

아이들의 똥꼬든지 발바닥이든지 몸 어디에라도 뽀뽀를 해 준다. 그럼 언제 아팠냐는 듯이 낄낄거리며 웃고 노니 그것이 꾀병 앓이, 엄마 사랑 시험해 본 것임을 나는 금방 알아차린다.

막내도 엄마의 그 뽀뽀가 사랑인 걸 다 느끼고 있었나 보다. 엄마 눈이 아픈 걸 알고는 그 작은 입술로 눈 위에다 계속 뽀뽀를 하다니 고맙고 기특할 뿐이다. 아직 천 일도 안 살아본 요 작은 생명도 지 엄마 사랑은 다 느끼고 다 아는가 보다.

네 아이들과 준호까지 여섯 꽃잎이 서로 포개어진다. 두 팔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꽃 한 송이를 꼭 껴안고 한동안 서 있다. 새벽바람이라 더 내 품에 꽃들은 참 따스하다.

“잘 다녀와 여보. 보고 싶어도 잘 참고 기다릴게. 난 아빠니까. 씩씩하게. 슈퍼대디니까. 그리고 당신의 슈퍼맨이니까. 사랑해. 공항 도착하면 전화하고. 전화 못 하겠으면 당신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 울지 말고 웃는 사진으로. 그리고 한국 도착하면 그땐 꼭 전화하고. 사랑해. 어서 가야지.”

이번에도 내 마음을 읽어준 준호가 고맙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 두고도 지난 며칠 동안 혼자 가는 한국행 생각에 두렵고 아프고 무서웠다. 혼자선 가기 싫은 그 마음을 아무에게도 들키기 싫어 오히려 말을 아꼈고 슬픔을 모른 척했다. 준호는 그런 나를 벌써 알고 자신도 가지런히 마음을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 나를 있는 힘껏 안아주고 다독다독해 줘야만 한다는 건 잊지 않은 준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함께 한다는 서로를 향한 구원의 믿음, 많은 말보다 뜨거운 포옹이면 충분하다. 이제야 내 얼굴에 아주 옅지만 안도의 미소가 드리워진다.

택시가 출발하고 길모퉁이를 지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집 앞에 서 있던 준호의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스프링이라도 있는 것처럼 몇 번이나 어깨와 목을 움츠리며 들썩이고 두 팔을 엇갈려가며 문지른다. 고개를 들며 빠르게 여러 번 눈을 깜빡여선 가슴에 차오르는 눈물을 말리며 휑한 공기 사이로 새벽하늘 별빛 속에다 준호는 슬픔을 맡기고 돌아서 본다.

“으흐흐 아직 춥다! 어서 들어가서 우리 공주님들 다시 재우자. 나는 아빠다. 준호야 가자.”

새벽바람의 이른 인사를 이제야 받은 듯 준호의 어깨 위로 약간의 쌀쌀함이 느껴진다.

준호가 집안으로 들어간 뒤 내가 떠난 집의 불빛도 작게 사그라든다.

민소하
국어국문학 전공 후 등단, 작사가 구성작가 신문기자 등 글과 함께 살았지만 결혼으로 경단녀!
몬트리올 이주 13년, 웨스트 아일랜드 거주 11년차. 네 아이들과 씨름 중인 살림과 육아엔 소질 없는 불량주부입니다.
카카오톡 soha8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