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그림에 쓰다

 

나비 그림에 쓰다

허영숙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은 다 꽃길이라 믿었던 시절 득음한 꽃들의 아우성에 나도 한 때 꽃을 사모하였다 꽃을 사모하니 저절로 날개가 돋아 꽃 안의일도 꽃 밖의 일도 두근거리는 중심이 되었다 꽃술과 교감했으므로 날개 접고 앉은 자리가 모두 꽃자리였다

꽃길을 날아다녔으나 꽃술을 품었다고 흉금에 다 아름다운 분粉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겹눈을 가지고도 읽지 못한 꽃독에 날개를 다치고 먼 남쪽 다산에 와서 앉는다 낮달이 다붓하게 따라온다 주전자에는 찻물이 끓고 *꽃 밖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꽃술을 사모하여 맴돌지는 말아라*  오래 전 날개를 다치고 이곳에 먼저 와서 앉았던 사람이 더운 붓끝으로 허공에 쓰고 있다

*정약용의 시  “題蛺蝶圖”  에서 인용

사랑을 할 때는 세상을 온통 꽃이라고 했지만, 사랑에 다치고 만 아픈 나비를  먼 남쪽으로  유배보내고 시인은 정약용이 되어 찻물을 끓이고 있습니다.허영숙 시인은 2006년 ‘시안’ 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바코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