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산길을 가다 보면
문득 마음이 환해지는 곳 있다
지난 폭우 때 나무가 쓰러진 곳
한 나무가 쓰러질 때 옆에 있던 다른 나무가
간신히 팔 벌려 안아주다가
함께 쓰러진 곳
나란히 누워 썩어가는 나무 둥치들이
푸른 잎 매단 채 부러진 가지들이
썩어가면서, 죽어가면서,
한껏 순해진 계곡 물소리를 풀어내고
노랑턱멧새 어여쁜 깃털도
몇 가닥 띄워 보내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래 전 늑골 하나를 부러뜨린 듯
저릿한 통증 같은 사랑을 떠올리는데
그러면 또 내 곁에는
잘 익은 가을볕처럼 한 사람이 다가와
죽음에 기대지 않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살아갈 수 없다고
가만가만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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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문재인이란 한국의 한 정치인이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에 갔다 온후에 밝힌 한 줄 심정이 떠오른다.
‘그 동안은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이제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분향소에 쓰여있는 가슴 아픈 글입니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돈이 먼저인 사회에서 가난은 단지 가난으로그치지 않습니다. 가난은 늘 피해자이고 희생자 입니다.’
혹 자는 말한다 그 배에 강남 애들이 타고 있었다면, 상황을 달라졌을 것이라고… 참으로 처참한 사회의 모습을 내뱉은 한마디가 아닌가. 이 시에서처럼,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과 그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제 죽음에 기대지 않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살아갈 수 없게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