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소
도종환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가장 고요해지는 사랑이 깊은 사랑이다
나릿재 밑에 나리소 못이 가장 깊고 고요하듯
요란하고 진부한 수식이 많은 사랑은
얕은 여울을 건너고 있는 사랑이다
사랑도 흐르다 깊은 곳을 만나야 한다
여울을 건너올 때 강물을 현란하게 장식하던 햇살도
나리소 앞에서는 그 반짝거림을 거두고 조용해지듯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 마음이 가장 깊고
착해지지 않으면 진짜 사랑이 아니다
물빛처럼 맑고 투명하고 선해지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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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가장 아름다운 비경 중 하나인 물길이 깊고 조용한 나리소에서 ‘접시꽃 당신’을 그렇게 보내고 도종환 시인은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나보다. 조용하고 깊고 투명한 사랑, 또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시인을 보면서 독자도 시속에 들어가 또 그렇게 닮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