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이정록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쪼가리를 숨겨오다 북측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서 이게 뭔 꼬락서닌가. 콩당콩당 분단 반세기보다도 길다.
“시인이십네까?” “네.”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야할 시인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신계사 앞입니다.” “요거이 조국통일의 과업을 수행하다가 산화한 귀한 거이 아닙네까?” “몰라봤습니다.” “있던 자리 고대로 갖다놓아야 되지 않겠습네까?”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합네까?” “일행과 같이 출국해야 하는데요.” “그럼 그쪽 사정을 백 천 번 감안해서리 우리 측에서 갖다 놓겠습네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네다. 통일되면 시인동무께서 갖다놓을 수도 있겠디만, 고 사이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네까? 그럼 잘 가시라요.”
한국전쟁 때 불탔다는 신계사, 그 기왓장쪼가리가 아니었다면 어찌 북측동무의 높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리요.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해야겠다. 쓰다듬고 쓰다듬는 가슴 속 작은 지붕. 조국산천에 오체투지하고 있던 불사 한 채.
한동안 편안한 남북간의 교류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버리고 요새는 한반도에 냉전의 귀신이 다시 나타난 것 같다. 여름이 오니 남량특집이 필요해서일까… 이 시 속에 나오는 북한관리의 투박한 협박(?)이 오히려 정겨운데, 통일이란 것이 오긴 오는 걸까… 이정록 시인은 충남 홍성 출생.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