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아담에게 최초로 맡겨진 의무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었다. 그러면 시인의 임무는 한자로 보면 제단의 말을 전하는 사람 (詩人)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만 아직 가슴에 맺히지 않은 사물의 본질을 불러내는 사람, 그리하여 신을 닮고자 하는 사람…. 그리우나 아직 숨어있는 소중한 것들의 이름을 불러보자. 그러면 우리는 시인이 되는거다.

` 김춘수 시인은1922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니혼 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서 수학했다. 1945년 유치환.윤이상.김상옥 등과 <통영문학협회>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릴케의 영향을 받아 삶의 비극적 상황과 존재론적 고독을 탐구하였고, 이후 십여년의 암중모색을 거쳐1960년대 말부터 ‘무의미시’를 주창, 자기만의 시세계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