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미당 서정주, 한때는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기도 했고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번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친일

행적도 그렇고 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을 가리켜

‘단군신화의 도래’라고 립써비스를 한 후 공공연하게 왕따를

당하다 2000년 생을 마감했다. 현재 그가 살던 집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 폐허가 되었다. 시만 놓고 볼것인지, 시인과 시를

함께 놓고 볼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한국사회에 던져졌다.

‘단군신화의 도래’라…. 하긴 단군이 민주적 절차인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는 않았을 터이니 어쩌면 틀린다고

할 수도 없겠지… 사회 저명 인사들의 친일 행적이 감추어진

역사와 국어를 배운 세대에게는 이 시가 일본 천황에게 바친

것인지, 시인이 독재정권에 아부를 했는지 따져볼 기회도 없이

그만, 미당의 국화는 나의 국화가 되버렸으니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