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우러난 물을 마시고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된다
나는 앞으로도 도저히 이런 맛과 향기의
꽃처럼은 아니 될 것 같고
또 동구 밖 젖어드는 어둠 향해
저리 컴컴히 짖는 개도 아니 될 것 같고
나는 그저
꽃잎이 물에 불어서 우러난
해를 마시고
새를 마시고
나비를 모시는 사람이니
긴 장마 속에
국화가 흘리는 빗물을 다 받아 모시는 땅처럼
저녁 기도를 위해 가는 향을 피우는 사제처럼
텅텅 울리는 긴 복도처럼
고요하고도 깊은 가슴이니
항상 중심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아픔에 대해 말해오던 시인이 이제 구도자 처럼 차를 마신다. 국화차 한 잔에 스스로 향기롭고 싶은 마음이 부끄러워서일까. 잠시 주춤 하더니만 그래도 고요하고도 깊은 가슴이고 싶다고 한다. 문성해 시인은 19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