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으로 돌아가는 사람
이덕규
서울 한복판 마로니에 공원에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 옛날 곰에서 사람으로 슬쩍 자리 바꿔 앉은 죄
곰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을 터
필시 저 곰 속에 후회막급인 사람이 한 마리 숨어있을 것이다
사는 일에 쫓겨
얼떨결에 곰 속으로 들어간 사람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고
백일을 참았다는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초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곰으로 돌아간 사람
육중한 몸을 이끌고 어슬렁
사람 동네 깊숙이 숨겨놓은 달콤한 꿀을 찾아 절벽을 타고 아슬하게
썩은 고목을 오르는 사람
오늘 중으로 상가분양 전단지를 다 돌리면
한밤중 다시 곰을 벗고 사람의 형식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
곰 일당으로 간신히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어제는 도심의 넘치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기웃거리다 끝내 처참하게 사살된
멧돼지 일가족 장례식에서
곰의 탈을 쓰고 유일하게 인간의 눈물을 흘린 사람
이제 사람으로 돌아와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한 계절 쪽방에서 잠만 자는 사람
조금씩 사람 이전의 곰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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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에 있었지만 노조활동으로 그만두고 외곽도로 공사장에서 10년을 보냈다는 이덕규 시인. 37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손수 지은 토담집에 기거하며 농촌시인으로 불린다. 그가 거리에서 더위속에 곰인형 탈을 쓰고 전단지를 돌리는 풍경에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쓴 한편의 시를 나눠본다, 마음을 나눠본다. 우리 곁의 누군가 불편하다면 나의 편안함도 언제 허물어질 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