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풍 의 상(古風衣裳)
조 지 훈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杜鵑)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와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회장저고리
회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고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지어다.
설명이 필요없는 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한국의 미를 다듬는 정성은 감히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시를 읽어가며 시어가 보여주는 대로 따라가자면 날렵한 처마끝에 달이 비치고 요새 사극에 나오직한 한복의 아름다움과 미인도가 그려진다.
서울에서는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버렸다는 기가막힌 소식이 들리는데 경제적인 가치로만 계산할 수 없는 한국인의 얼이 담긴 문화재는 어느 위정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에 소멸된 것일까. 이 시에서 처럼 혹시 허물어지며 작별의 손을 흔들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