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맛

유희영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포도 송이를 리본까지 달아 예쁘게

포장하여 선물로 들고 온 사람이 있었다.

하얀 백지를 뒤 배경으로 담고

투명하게 비치는 plastic window 의 앞면으로 그 내용물을 엿볼 수 있게

만든 작은 선물용 봉투에 한 송이씩 포도를 넣어 포장했다.

주는 사람의 깔끔한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아담한 포장 때문이었을까?

선물바구니에 담긴 포도가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고.

유난히도 까만 포도 알은 고향의 향을 물씬 담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한 송이를 건네주며

멀리 바다 건너 온 한국산 포도라고 했다.

포도를 선물로 받았던 일이 있다.

내가 고향을 떠나던 때의 일이다.

안양에 사시던 이모님이 나를 찾아 서울로 상경하셨고.

바구니 하나 가득 채워 들고 오신 이모님의 선물은 포도이었다

당시 안양은 포도농산물로 유명한 곳이었다.

탐스런 포도를 커다란 바구니에 어찌나 가득 채우셨던지 —  

그 많은 포도를 어찌하라는 것이었는지—

그 분의 넘치는 사랑처럼 포도가 바구니를 철철 넘고 있었다.

이모님은 내가 미국유학을 떠나고 얼마 후에 젊은 나이에 타계하셨다.

그날의 작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되리라 누가 짐작을 했을까?

포도 한 알을 입에 물어보니

가슴이 고향의 맛으로 적셔진다.

달콤한 맛, 그 속에

이모님의 사랑도 있고, 떠오르는 이모님의 인자하신 모습에 가슴이 아련하다.

오랫동안 잊었던 고향의 맛, 까만 포도 알 ―

아― 그렇게 음미 하며 추억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간호사가 내게 포도 송이를 되돌려주며

얼굴에 무엇인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눈을 감고 입은 찌그려 들었고—

거의 울상이 된 그녀의 모습이 나를 웃긴다.

입안에 물고 있던 포도를 씹어 내 뱉으며 손을 내어 젓는다.

맛이 이상하다고 한다.

한국의 포도는 껍질이 두껍고, 살이 엷어.

이곳의 포도 맛과 크게 다르다.

서로 다른 음식 문화의 차이에도 있겠지만 맛과 추억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우리 고향의 맛을 알리는 없지 않은가?

한 알의 포도를 씹으면서 입안 가득히 고이는 고향의 향,

아름다웠던 추억에 나는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