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문 열고 있었다
문 밖 짧은 해거름에 주저앉아 햇빛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북향,
쓸쓸한 그 바람소리 듣고 있었다
어떤 누구와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싶지 않을 때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창
나뭇잎 다 떨어진 그 소리 듣고 있었다
세상 모든 추운 것들이 추운 것들끼리 서로 모여
내 핏속 추운 것들에게로 다가와
똑 똑 똑
생의 뒷면으로 가는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있었다
물결치는 겨울 긴 나이테에 휘감긴 울창한
숲 향기와 지저귀는 새소리와
무두무미한 생의 입김들이
다시 돌아올 봄 문턱에다 등불 환히
켜는 소리 듣고 있었다
마치 먼 길 혼자 달려온 천 년 전 겨울
천천히 가슴으로 녹이는 것처럼
내 몸 안의 겨울 이야기들이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실려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기억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듣고 있었다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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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겨울에도 바람소리는 숲을 흔들고 그때도 또 그렇게 숲에 눈이 내리고 눈빛은 또 그렇게 변함 없이 세월을 지나 내게로 왔을 것이다. 시인은 문득 겨울 풍경 속에서 천 년 전 풍경을 본다. 안타까운 듯 서로 기대고 있는 문장의 표현들이 이 겨울의 가슴을 가만히 흔들고 있다. 아름다운 시다. 김상미 시인은 ‘작가세계’로 등단했고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