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만다라
임영조
대한 지나 입춘날
오던 눈 멎고 바람 추운 날
빨간 장화 신은 비둘기 한 마리가
눈 위에 총총총 발자국을 찍는다
세상 온통 한 장 수의에 덮여
이승이 흡사 저승 같은 날
압정 같은 부리로 키보드 치듯
언 땅을 쿡쿡 쪼아 햇볕을 파종한다
사방이 일순 다냥하게 부풀어
내 가슴속 빈터가 확 넓어지고
먼 마을 풍매화꽃 벙그는 소리
들린다, 참았던 슬픔 터지는 소리
하얀 운판을 쪼아 또박또박 시 쓰듯
한끼의 양식을 찾는 비둘기
하루를 헤집다 공친 발만 시리다
아니다, 잠시 소요하듯 지상에 내려
요기도 안될 시 몇 줄만 남기면 되는
오, 눈물겨운 노역의 작은 평화여
저 정경 넘기면 과연 공일까?
혼신을 다해 사바를 노크하는
겨울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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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는 부처의 깨달음을 그림으로 나타낸다는 말이다. 비둘기 한 마리가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먹이를 찾는 광경에서 지상의 운판에 몇줄의 시를 남기는 시인의 모습을 비추어보며 높은 경지의 언어로 재구성 한 임여조 시인은1946년 충남 보령 출생이고 ‘월간문학’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온통 눈에 덮힌 도시에 갇혀서 이승이 흡사 저승같은 날 참았던 슬픔 터지듯 시 한편 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