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소사

김문주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없는 때
눈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작은 꺾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앉아
더 깊어진 일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들어 눈뭉치를 털어놓는다
숲의 한쪽 끝에 가지런히 모여앉은 장광같은 부도탑들
부드러운 육체들이 햇빛의 소란함을 안치고 있다.
봉래루 설선당 해우소 산사의 마당에는
천년의 할아버지 당산과 요사까지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
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
숨길이 되고 집채 사이를 오가다, 아
바람의 꽃밭, 열림과 닫힘의 자리에
바래고 문드러진 수척한 얼굴들
슬픔도 연민도 모두 비워낸 소슬무늬꽃문
난만한 열망들이 마른꽃으로 넘는 저, 장엄한 경계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영하 5도의 안밖에 눈발 사무치는 길을 걷다보면 꼭 선사가 아니더라도 이 시의 풍경과 맞물리는 장소를 만날 수 있다. 나를 비우고 지나온 기억도 비우고 마침내 덩렁 남는 문장까지 비우면 이 겨울시의 울림은 내소사 지나서 어디까지 닿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