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도종환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있다 장롱이 그렇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단이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본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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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시꽃 당신’의 첫 아내를 보냈을 때 도종환 시인에게는 갓 4달된 딸과 2살된 아들이 있었다. 그런 그가 재혼을 했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 시를 보고나니 그의 어두움이 그가 겪어온 세월처럼 또 상처로 남을까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왜 자꾸 그에게 아픈 옷을 입히는지 그래서 매달려온 시들은 왜 또 이렇게 상실과 소외와 억압과 고통을 주는지… 독자의 한 사람으로 도종환 시인이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