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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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수묵화를 보고 있다. 그러면서 몸 담은 세상을 수묵화처럼 문질러본다. 세상은 번져 사라지고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번지고 번져서 경계를 허문다. 거기서 사랑을 보고 희망을 본다. 장석남 시인은 1987년 경향신문에 ‘맨발로 걷기‘ 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