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圖 세한도 – 김유경

 

歲寒圖 세한도

 

김유경

 

눈 덮힌 화선지 위를 어숫어슷 맨발로 간다 길은 무한한데 인적은 오래 전 눈에 가리고 발자욱 머금은 길을 따라 먹물 스며 오르면 키 큰 나무는 저들끼리 한 폭을 이루고 선다 저 나무 아래 눈 내리는 소리 뚝뚝 떨어져 붓 끝에 잠기고 나면 눈 아래 마을 또한 아련해진다 추사는 어디서 저 푸른 빛 끌어 텅 빈 하늘을 그리고 있는지 백 육십년 긴 눈밭은 변함없이 멀고 어쩌자고 저 푸른 빛은 마냥 푸른지

 

가슴에 부딪쳐 울다가 글이 되면서 깨져 버리는 이 알 수 없는 언어는 저 눈밭 어디쯤에 나를 묻고 저 혼자 마냥 푸르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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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린 ‘세한도’. 그가 눈밭에 가슴을 묻었으니 160년 후인 2000년대에도 그곳의 소나무가 아직 푸르다. 후예들은 쓸쓸한 붓질에 묻어나는 결기마저 감당하기 위해서 여백이 전하는 말을 찾아 이렇게 시 한편 마름질 하였으니 추사여 이제 평안하시라.

김유경 시인은 한국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토론토 ‘시 6’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를 지면에 싣도록 허락해준 김유경 시인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