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G, Notre Dame Grace.. 몬트리올..
다운타운을 가로질러 난 쉐브룩 거리는 15번 고속도로를 만나고도 멈추지 않는다.
길게 한 호흡 하고도 서쪽으로 약간 기운 이 곳..
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하여 이곳에 왔다..
 
Ⅰ. 아이반과 이본느..

 

땡그랑.. 도어를 열고 산발한 표정의 아이반이 들어온다. 산사의 울림을 주는 작은 도어 종소리와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그의 표정이다. 이본느와 크게 싸웠다 했다. 잠시 커피를 권하는 와중에도 그의 창백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어린 아이들 앞에서 이미 별거와 이혼을 서로 선언한 참이라 하니 이번만큼은 조용히 지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껑충 큰 키에 마른 체형인 그는 늘 구부정한 어깨가 습관이 되어 있었다. 상대방을 리스펙트 하려다 보니 아연 그렇게 되었노라는 설명이지만 나는 그의 설명이 있는 그대로인 걸 안다. 빠른 하관에 긴 머리, 늘 깎지 않아 더부룩한 수염에 치아도 성치 않은 채로도 그는 참 다변이었다. 항상 내 열배는 말한다. 다행히 난 듣는 것이 훨씬 편안한 타입이다..
 
아이반 이고르스키..

그의 이름이다.
올해 41세. 영어와 불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퀘벡커이지만 그의 선조는 러시아인이다. 아버지는 성공한 이민자로 캐나다에 정착하였지만 아들의 인생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10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되지 않아 재혼한 아버지는 새어머니와의 사이에 여동생을 얻었다. 아버지는 농장주로, 경영자로 성공하였지만 아이반은 새어머니와의 불화로 18세에 집을 쫓겨 나오다시피 나와야 했다. 아버지는 집을 나서는 아들을 배웅하지 않았다. 사회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고교졸업생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진로는 군대.. 4년간의 군생활은 모든 면에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후방에서 그는 기술반의 선임으로 모든 부대 건축시설의 수리책임자였으며, 아프간 파병 시엔 비정규전 전선의 분대장으로 크고 작은 테러와 전투에서 세 군데의 치명상을 입고도 살아남는 극한의 경험을 했다. 그는 두려움이 없는 병사였지만 용기는 아니었다. 용기란 두렵지만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인생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던 탓에 아예 두려울 수가 없었다. 늘 죽음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조금의 두려움도 가져보지 못한 탓에 그는 언제나 목숨을 내던지듯 싸웠고 많은 적들을 사살하였으며 이내 부대 내외에 극강의 솔져로 용명을 떨쳤다.

 

퇴역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고개 한 번 끄덕이는 일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그만 돌아가라는 게 전부였고, 인사하고 돌아선 아들은 다신 아버지를 안 보리라 했다. 아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아버진 그렇게 늙어 갔고, 병들었고 끝내 돌아가셨다. 수백만 불의 재산은 여동생 앞으로 남겨졌다. 유언이라고 했다. 인근부대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그를 불렀다. 일자리가 있다고 했다. 플로리다에서였다.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남쪽을 향했다. 유명 미식축구선수의 집건축 이었다. 세상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 풋볼선수는 그러나 값싼 인물이었다. 람보르기니와 마이바흐가 일찌감치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 너른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방과 욕실만 14개에 이르는 대저택을 건축하는 3년의 기간 동안 물 한 병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때를 행복하게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