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배우는 기쁨 21: 제 4 장-기독교 인생관-Scholasticism, Renaissance, 종교개혁
                                                                    
Bonaventure 는 St.Augustien의 하나님의 신성 (Divinity) 론과 Plato의 영적 세계의 우월성 이론의 영향을 받아 믿음이 이성을 앞서 간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Dominican신부인 Aquinas는 믿음에 있어서 이성의 비중을 크게 보았다. 믿음은 합리적 이성적 토의 (Augumentative)를 통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Aquinas 의 역사적 거작인  Summa Theologica 는 하나님 존재의 증거를 포함하여 믿음의 논리적  및 과학적 기반을 마련 했다는 데 그의 위대함이 있다.
스콜라스틱주의의 또 하나의 측면은 학습 방법이다. 이 점에서 Aristotle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학습방법은 다음 단계를 거친다. 우선 학습대상 자료를 검토한다. 가급적이면 관련된 자료를 다 검토한다. 두번째로 학생은 각자의 의견 및 이견을 제시한다. 이것은 의무적이다. 이것이 Sententiae 단계다. 다음에 변증법식의 토론을 하면서 배운다. 이 학습 방법은 현시점에서도 높히 평가를 받는다.

Thomas Aquinas (1225-1274)의 업적을 보자. Aquinas의 신학 및 윤리학의 기반인 자연법 (Natural Law)에 대해 알아보자. 자연법은 하나님의 법이며 영원하고 우주를 지배한다. 자연법의 목적은 선(Goodness)을 지향하고 악 (Evil)를 억제하는데 있다. 그런데 만물은 이른바 성향 (Inclination)을 가지고 있다. 동물은 육체적 욕구, 인간은 육체적 욕구 및 이성 이라는 고상한 성향을 부여 받았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법을 알게 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지식을 Syneresis라 한다. Syneresis는 양심(Conscience)으로 연결된다. 이 양심에 따라 인간은 선행 (Moral Act)과 악행 (Evil Act)을 구분할 수 있다. 즉 양심이 윤리적 행위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4.2.4 문예 부흥시대 (Renaissance)(1300-1600)
Renaissance 란 표현은 불어 표현이며 재생(Rebirth)이라는 뜻이다. 이 시대의 사람은 고대 희랍 및 고대 로마시대의 문명을 재생 및 부흥시키고자 했다. 동기를 살펴보면 그 때까지의 서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더 개혁적이고 진보적이고 인간적 사고방식으로 살고 싶어 했다. 그 때까지의 서구 사고방식 추이를 보면 고대 희랍시대의 이성주의, 사도시대의 계시적 (Revelatory)기독교 신앙, 중세기 초반 및 중반시대의 교회억압 및 부패, 스콜라스틱식의 엄격한 사고방식 순서로 변화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방식 안에서 “인간” 의 창의력, 존엄 특히 감정의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Renaissance시대의 사람들은 인간의 가치를 높히 평가하는 문명을 창조하고 싶어했다. 이것이 바로 문예부흥의 동기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 신앙을 이성뿐만 아니라 감각 및 감정을 통해 경험하고자 했다. 방법은 인간의 비중이 컸던 고대희랍 및 로마시대의 예술, 문학, 건축, 과학 등을 다시 배우는 것이었다. 문예부흥 운동은 1390년대에 이태리의 Florence 및 Siena 지역 도시에서 출발하여 3 세기 동안 구라파 전 지역에 확산 되었다. 이들은 스콜라스틱주의의 인간-하나님의 간접적 관계를 부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 소통한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성뿐만 아니고 감각 (Senses)도 중요하다고 했다. 감각은 겸손(Humility), 내관(Introspection) 및 유화(Meakness)로 구성 된다고 믿었다. 한편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학문은 문법, 수사학 (Rhetoric), 시(Poem), 역사학, 윤리학 등이다. 학습 방법은 스콜라스틱 학파의 학습방법을 적용했다.
Renaissance 운동은 인류 역사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가장 중요한 영향은 인간의 존엄성 추구에 주는 영향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건축, 미술, 음악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 하고자 했다. 정치학에서는 Niccolo Machiavelli, Thomas Moor 등이 고대 희랍-로마시대의 정치학적 개념을 재생 시켰다. 미술은 Leonardo Da Vinci (Mona Lisa), Michelanelo 및 Raphel 등이 인간의 창의력과 창조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Filippo Brunelleschi 는 Florence 성당을 건축하면서 인간의 상상력을 과시했다. 유명한 St. Peter Basilica 성당의 재건은 Beamante, Michelangelo, Raphel, Mademo 등의 복합적 예술의 위대함을 과시했다. 또한 이 시대는 현대과학의 출발점이었다. Leonardo Da Vince 의 인간 세부학 및 항공학 연구는 앞으로 올 과학 및 첨단기술 시대를 예고 했다.

4.2.5 종교개혁(1400-1600)
문예부흥시대 후반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기독교 역사상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사람은 Luther 특히 Calvin이었다. 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은 당시 교황청에서 면제부 매각을 강행하는데 절대 반대함으로 시작 되었다. 면죄부란 구원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교황청은 로마의 성당건립을 위해 면죄부를 매각한 것이다. Luther 의 투쟁은 당시 교회의 독제통치, 기독교의 세속화 및 정치화, 교황의 신성화 등의 문제가 있던 종교세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 22: 제 4 장-기독교 인생관-종교개혁, 계몽 운동, Kant
                                                                    
 Luther 는 1522 년에 신약을, 그리고 1534 년에 신구약을 독어로 번역했다. 이 계기로 독일 민족은 성경을 직접 소유하게 되어 기존의 교회가 얼마나 비 성경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Luther는 기존의 교의에 반박하였다. 기존의 교의에는 두 개의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믿음 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 하기 때문에 자선사업을 많이 해야 구원을 받는다 (Fides caritate formata)고 했다. Luther 는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관련이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을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한편 Luther는 성만찬 (Eucharist)에 대한 교의는 기존 교의와 동등했다. 하지만Luther는 결국 파문(Excommunication)을 당했다.

Calvin (1509-1564)은 원래 법학을 전공했었다. Luther 는 로만 카톨릭 신부였다. Calvin의 신학은 기독교 강요 (The 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에 담겨있다. 이 거대한 책은 1536년에 시작하여 1559 년에 완성되었다. 책은 4 개 호로 발간했다.

 제 1 발간에선 하나님의 성경을 통한 계시, 삼위일체 교의, 우상숭배, 하나님의 섭리 등의 내용이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어도 최후심판을 받는 다는 내용도 있다. 제2차 발간에서는 원죄 및 인간의 타락을 설명한다. 이 점에서 St. Augustin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죄인이며 구원을 받아야만 산다는 것이다.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이 Abraham에게 주신 3 대 언약이 내용이다. 세 번째 발간은 하나님을 아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믿음의 효과는 사람이 거듭나는 것이다. 인간은 영 원히 완벽하지 못한다. 의인화는 하니님의 은혜다 (God regards us as righteous, when he has received us in grace). 예정론도 내용 중의 하나다.
                                                                         
제 4차 발간이며 마지막 발간은 교회에 대한 내용이다. Calivin은 교황의 권위주의를 반대했다. 교회는 신자의 공동체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다. 교회는 단 하나이며 우주적 (Universal) 이다. 교회의 성직자는 사도, 예언자, 복음 전달자, 목사 및 박사다. Calvin의 또 하나의 이론은 성례에 대한 이론이다. 기존의 교회는 7 개의 성례를 시행하는 대신 Calvin은 오직 두개의 성례(세례 및 성만찬) 를 주장했다. 한편 성만찬에 대해 Luther 는 떡이 주님의 살이 되고 포도주가 주님의 피가 된다고 주장했다. 즉 Luther 는 Transubstantiation 을 주장했다.  반대로Calvin 은 떡과 포도주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인다고 주장 했다.
요약하다면, Luther 는 개신교 교의 설립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한 대신 Calvin은 개신교의 신학의 원형을 구상 했다고 보아야  한다.

4.2.6 계몽운동시대 (1600-1800)

종교개혁 후 과학발전, 기술 발달 및 산업 혁명 등으로 서구의 경제는 가속도로 개발되고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기게 되어 종교의 필요성을 경시하게 되었다. 또한 로마 카톨릭 종교와 개신교 종교의 경직성, 권위주의, 추상주의 등에 대한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기에 많은 지성인들이 인간중심의 사상체제를 내 놓았다. 다시 말 한다면 고대희랍의 이성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돌아 가게 되는 것이다. 당시 주요 철학가 및 지성인들은 다음을 포함 했다. Spinoza (1632-1677), John Lock(1632-1704), Pierre Baye (1647-1706), Isaac Newton (1643-1777) Immanuel Kant (1724-1804), Hegel (1770-1831), Voltaire (1694-1778), Montesquieu (1689-1755) 및 수 많은 지성인이 계몽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은 Benjamin Franklin, Thomas Jefferson 등의 미국 지성인도  참여한  운동이었다.

Immanuel Kant (1724-1804)

그 시대의 지성인 중 가장 대표적 철학가는 Kant 와 Hegel 이었다. Immanuel Kant 의 주장은 인간이 “신” 라는 것이다. 자연은 피조물이지만 인간은 창조자 라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의 핵심은 감각과 이성간의 관계다. 지식 형성 과정에서 그는 시각(Perception)과 개념(Conception)을 구분한다. 시각은 객체를 파악하는 것이며 개념은 시각을 이용하여 진리를 안다는 것이다. 개념이 없는 시각은 맹목적 (Blind)이다. 왜냐하면 개념이 판단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각없는 개념은 빈 그릇이 된다. 왜냐하면 시각을 통해서 개념정립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시각은 감각(Senses)에서 온다. 개념은 이성이 마련한다. Kant철학의 목적은 경험주의 (Empiricism) 와 이성주의 (Rationalism)을 결합하는 것이다. 순수이성은 효용성의 결여이다. 실용성이 부진하다. 경험에 입각한 이성활동이 진리탐구의 기법이다. 이와 같이 Kant의 주장은 사람이 신이고 사람의 핵심은 이성이라는 것이다. 다만 감각은 이성의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23: 제 4 장-기독교 인생관-Hegel, 공리주의

George Wilheim Friedrich Hegel (1770-1831)                                                                            
Hegel의 철학적 기여는 진리의 역동성(Dynamism)이라 하겠다. 그의 철학의 중점은 진리탐구의 과정은 정적(Static)이 아니고 동적(Dynamic)이라는 것이다.  모든 개념은 다음 단계에 따라 형성된다. 이단계를 Traidic 이라 한다. 이단계는 3 단계로 구성된다. 제 1 단계 에서는 일정 기존 개념으로 시작 한다. 이 단계는 (in-itself: an-sich)라 한다. 제 2 단계는 반대 개념을 구상 한다. 이단계를 외부의 개념단계라 한다 (out–of-itself: anperssein). 제 3 단계는 원래 개념을 평가하는 단계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자유 (Liberty) 라는 개념을 보자. 제 1 단계: 자유는 무질서한 행동이다. 제 2단계: 자유가 없으면 독제다. 제 3 단계: 법으로 참다운 자유가 가능하다. Hegel철학의 목적은 세상의 자유다. 인류 역사의 목적은 더 자유스러운  즉 더 완벽한 세상을 건립하는 것이다.
                                                            
Hegel은 3-단계 과정방법을 현실변화에 적용했다. Hegel은 Aristotle을 매우 존경했지만 존재체 (Being)에 대해선 입장을 달리했다. Aristotle  에 따르면 Being 은 완벽하고 정적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Hegel은 반대 입장을 취했다.  Being 을 파악하려면 그 존재체의 형성과정을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에 책상(Table)이 있다. Aristotle 의 눈에는 한개의 책상 일 뿐이다. 하지만Hegel의 눈에는 책상은 한개의 과정의 일부분이다. 그 물건이 지금은 일 개의 책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무(Tree)에서 온 것이다. 또한 그 책상은 언제가는 재 (Ash)가 될 것이다. 즉 이런한 3 단계의 추리과정을 통해야 책상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Hegel의 눈에는 한개의 물질 혹은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본질과 그 현상의 과거와 미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히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Becoming). 그래서  과정 (Process: Das Werden)이 중요시 되는 것이다.

Hegel의 역사에 대한 주장은 이렇다. 역사는 일정 목적 (자유)를 향해 변한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단계는 3 개 단계의 과정으로 구성되며 이것이 이른바 변증법적 변화다. Hegel에 따르면 인류역사는 이러한 단계에 따라 더 큰 자유를 향해 전진한다.

그러면 Kant-Hegel철학이 계몽운동 시대 및 그 후 시대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답은 이렇다. 우선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다. 둘째, 인간의 힘은 이성이다. 셋째, 만물은 일정 목적을 위해 변한다. Kant-Hegel철학은 다양한 학술 (철학, 사회학, 정치학 및 심리학) 등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계몽시대의 사람중심 사상은 Kant-Hegel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철학을 등장시켰다. 그 중 가장 영행력이 있었던 이론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 마르크스 주의 (Marxism), 실존주의(Existentialism), 자유주의신학(Liberal Theology) 및 Postmodernism등이다.

1)공리주의(Utilitarianism)
공리주의란 18세기 영국 철학가 Jeremy Bentham (1748-1832) 및 19세기의 영국 경제학자John Stewart Mill에 의해 개발된 이론이다. 인간행동의 동기는 고통을 최소화 하 고 기쁨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Bentham은 그의 저서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s”에서 그의 공리주의의  원칙을 설명했다. 그 중 흥미있는 것은 최대의 행복 원칙 (The Principles of Greatest Happiness), 또 하나는 자기 효용과 타인의 효용을 일치하는 원칙 (The Principle of Identification of One’s Interests with Those of others). 이 두 개의 윈칙에따라 각자가 지기의 효용극대화를 추구한다. 한편 자기의 효용이 타인의 효용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Bentham 의 공리주의에는 도덕적 측면이 강하다. 왜냐 하면 모든 사람의 행복은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결정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복은 자신의 행복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 행위다.

John Stewart Mill (1806-1873)은  영국 철학가이며 동시에 저명한 경제학자였다. Mill은 그의 저서 Utilitarianism 에서 그의 이론을 설명했다. 그는 Bentam과는 달리 공동체 자체의 효용에는 큰 비중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각자가 자기의 효용을 그대로 하면 공동체의 효용도 극대화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 발 공리주의는 현대 경제학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는 모든 소비품의 가격을 감안한 한계효용치가 일치하면 가능하다. Vilfredo Pareto (1848-1923)라는 경제학자는 개인의 효용이 공동체 전체의 효용에 어떠한 영향을 주느냐에 대해서 이론을 제시했다. 공동체의 효용치 극대화의 조건을 제시했다. 조건은 이렇다. 즉 한사람의 효용이 타인의 효용을 상실하게 하면 안된다. 즉 Zoro-Sum Game 이 아니고 Win-Win game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이론은 자칫하면 사익(Egoist Interest)추구를 윤리적 행위 (공동 효용)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 사람의 효용이 타인의 효용을 저하시킬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경제 활동은 Win-Win 이 아니고 Zero-Sum-Game 혹은  Minus-Zero-Sum Game 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 24: 제 4장-기독교 인생관-마르크스 주의, 실존 주의
                                                            
2)마르크스 주의(Marxism): Karl Marx(1818-1883)
마르크스주의는 한국에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준다. 이유는 마르크스라 하면 한국인이 저주하는 공산주의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1848년에 Marx 는 Engels와Communist Manifesto 를 작성했기 때문에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Marx는 철학가 이며 자본론 (Das Kapital)를 쓴 저명한 경제학자이기도 하고 사회학자, 사학가등의 전문가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인생관에 초점을 맞춘다.

Marx의 인생관은 그의 역사적 물질주의 (Historical Materialism)에서 볼 수 있다. 이 이론은 사회학, 경제학 및 형이상학의 결합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로 결정된다. 즉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합계다. 이러한 견해는 그의 사회학에서 온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재화 생산 체제에서 자본자 대 노동자 혹은 고용주 대 피 고용인 관계가 설립된다. 문제는 노동자는 약자고 자본주는 강자다. 약자의 행위를 강자가 지배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사회관계가 인간행위를 통치한다. 경제적 행위는 물질적 행위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제도, 사회제도 및 정치체제는 경제활동에 따라 형성된다. 경제적 행위(물질적 행위)는 하위구조다 (Infrastructure). 법제도, 사회체제, 정치구조 등은 상위구조다(Superstructure). 하위구조는 물질(Materialistic Element)이며 상위구조는 사회 의식(Social Conscience)이다. 사회의식은 인간의 의지가 결정한다. 이 부분은 그의 형이상학에서 오는 이론이다.

Plato, Aristotle, Kant, Hegel 등 유명한 서구 철학가들은 이성이 물질을 지배한다고 믿었는데 Marx는 반대로 물질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인류역사의 흐름은 이성이 아니고 오직 물질적 요소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이론이 신(God)이 없는 역사적 변화 단계이론의 토대가 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의 내적 물리적 모순 (한계자본 이윤의 저하)으로 말미암아 노동자 착취, 사회분열, 혁명 등의 사건이 발생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신 (God)이 존재할 수 없다.
3)실존주의(Existentialism)
인생관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타당성을 가장 위협한 사상 중의 하나가 실존주의다. 실존주의는 다음의 신념에 기인 한다. 첫째, 인생은 허무하고 괴롭고 고달프다. 둘째, 현 기독교 교회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다. 셋째, 이른바 객관적 진리는 없다. 진리는 인간의 경험이다. 즉 존재(Existence)가 본질(Essence) 앞에 온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진리 개념과 비교해 볼 때 정 반대다. 넷째, 인생의 문제 해결은 각자가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인생의 허무함은 벌써 구약시절 솔로왕이 지적한 사실이다. 실존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준 소설가 중 Dostoevsky, Kafka, Sartre및 Camus 등이 유명하다.

Fyodor Mikhaylovich Dostoevsky (1821-1881)는 그의 소설”The Brothers Karamazov”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 하고 허무한 세상에서 헤매는 비극을 묘사한다. Franz Kafka는 그의 소설 “The Metamorphosis (변질)”에서 주인공인 Gregor Samsa판매원이 무서운 곤충이 되어 가족 및 사회에서 제외되는 이야기를 통해 개성이 있는 사람은 가족 및 사회에서 배제 당한다는 이야기다. 한편 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1905-1980)의 소설 “The Nausea(메스꺼움/구토)”는 연구원 Roquentin이 세상이 얼마나 무자비한가를 깨닫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소설, “Being and Nothingness (존재와 허무함)”에서 주인공이 인생의 의미를 절망 속에서 찾는 이야기를 한다. 
                                                                  
소설가 중 가장 20세기 젊은이 들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Albert Camus (1913-1960)이었다. 그는 그의 소설 “The Myth of Sisyphus”에서 끊임 없이 바위를 산 위로 굴려 올리며 아래로 떨어진 바위를 계속 위로 굴리는 어리석은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의 비 합리성, 비 인간성 및 비 도덕성을 비난한다. 그의 소설 “The Stranger”에서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누적된 매너리즘(Mannerism) 및 경직된 사회구조 내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 한편 Camus는 인생은 허무하지만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의 소설 “The Plague(흑사병)” 에서 Oran지역의 주민들이 합심해서 전염병과 싸우는 이야기를 한다. Sartre 및 Camus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Sartre는 거부). 이들 작가 외에도 많은 문학인들이 실존주의적 작품을 발표했다.

문학가들이 실존의 비극적 상태를 묘사했다면 철학가들은 실존주의의 철학적 및 이성적 근거를 제공했다. 우선 Soren Aubye Kierkegaard (1813-1855) 의 철학을 보자. Kierkegaard 는 별다른 실존주의 이론은 제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기독교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25: 제 4 장-기독교 인생관-실존주의
                                                                        
교회는 신자들을 아이들로 취급하면서 신자들이 신(하나님)과 직접 연결되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다. 교회는 정치계와 유착하여 교회의 성장 기준을 등록한 신자 수에 두었다. 왜냐하면 신자 수는 정치적 힘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개개인의 신앙 계발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개개인의 믿음보다는 교회의 양적 성장을 중요시 했다. 특히 교회-정부 유착은 믿음이 없는 신자 (unvelieving believers)의 교회가 되게 했다. Kierkegaard는 비약적 믿음 “Leap of Faith” 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하다. 모든 종교에는 객관적 증거가 없으며 항상 의구심이 있게 마련이어서 믿음을 유지하려면 의구심을  초월하여 믿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은 “주관성” (Subjectivity)이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인간은 내관(Introspection)을 통해 자신을 알게된다. 주관성이 진리이고 진리가 주관성이다 (Subjectivity is truth and truth is subjectivity). 객관적 진리가 있다 해도 각자의 반응은 주관성에 따라 다르다. 이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두 사람이 동등하게 사회내의 빈곤격차의 사실을 안다 하자. 그러나 한 사람은 빈곤에 대해 무관심하고 또 한 사람은 무엇인가 하려고 한다. Kierkegaard의 요점은 기독교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 못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관성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신이 죽었다” 라는 그의 선언 때문에 그는 무신론자로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아온 철학가다. 그가 무신론자인 것은 사실이다. 학교 시절 당시 기독교에 대해 실망하여 믿음을 버린 사람이다. 그의 개인 문제와는 관계없이 그의 기독교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다.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 “신이 죽었다”라는 말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 아니고 기독교인이 신을 버렸다는 뜻이다. Nieztsche는 오히려 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The Gay Science” 에서 다음 구절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신 (하나님)은 천 년 이상 서구의 문화 및 가치관의 기반이었다. 인간은 그 신을 죽였다.” 또 Nieztsche 는 이러한 말을 했다.  “The death of God leads to the loss of any universal perspective on things and objective truth.” 즉 신의 죽음은 만물에 대한 복합적 시각 및 객관적 진리를 버리게 했다. 신(God) 없이는 오직 무질서하고 불안한 시각을 갖게 된다고 한 것이다.
Nietzsche는 허무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다. 즉 그가 허무주의를 주장했다고 오해한다. 실은 그의 말은 신이 없으면 허무주의 (Nihilism)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The death of God must be followed by a long twilight of piety and nihilism.” (신의 죽음은 오래 동안 신앙심이 없어지고 허무주의적 세상이 될 것이다.)  Nietzsche 의 메시지는 Kierkegaard 같이 기독교 종교는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의 이론을 체계화한 사람이 Sartre다. 그의 이론의 토대는 자아 (Ego)의 초월성 (Transcendence)이다. 만물은 스스로 중요하다 (Things-in-itself is important.) 스스로에 대한 의식은 사전 의식이다(Pre-conscience). 하지만 참다운 의식은 반사적 의식이다 (Reflective conscience). 이 의식은 남을 (현실) 알면서 스스로를 아는 의식이다. 문제는 반사적 의식은 사전의식을 포섭 못 한다. 따라서 결과는 불안감 및 허탈감이다. 이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Sartre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타인으로 하여금 나의 가치를 인정하게 하려면 내가 타인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콘택스튜얼 (Contextual) 존재다. 서바나 소설가 Oreta Y Gaset는 yo soy y circonstantia (나는 나다. 나는 나의 환경이다)라고 했다. 즉 인간은 환경의 결과라는 말이다.
Sartre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인간의 본질이 생존을 지배하지 아니하고 생존이 본질을 결정한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 아니고 인간은 창조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종이 연필 (Paper Pen)을 볼 때 종이연필을 만든 주체는 사람이다. 연필을 만든사람이 연필의 본질을 정한다. 본질을 정한 후에 연필이 존재한다. 인간을 만든 주체가 없기 때문에 따라서 본질이 없다. 인간의 본질은 이 세상을 살면서 얻어지며 인간은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 자유 주체다 라고 한다. Sartre의 또 하나의 개념은 참다운 사람 개념이다. 신이 없는 존재라 해서 윤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허무주의와 다르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참다운 사람이다. 참다운 인간성은 배우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얻어야 (Earn)한다는 것이다.

Martin Heidegger (1889-1976) 는 Kierkegaard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의 존재체(Being)의 개념을 개발한 철학가다. 그에 의하면 Plato, Aristotle를 비롯 과거의 철학가들은 인간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보았다. Heidegger에 따르면 이것은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경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의 거작 “Sein une Zeitung: 존재체와 시간) 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엇인가를 토의한다. 그는 Dasein라는 개념을 제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