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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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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Joseph Chung - Column
 정희수 칼럼



즉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분일 뿐만 아니라 우주를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속성은 타 종교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 선지자 중심형 접근에서는 예수님은 빈곤자, 과부, 고아, 사회에서 버림 받은 자들을 위한 자비를 주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한계적 사람들을 도외시 할 경우에 유발할 수 있는 문제를 경고 하신다. 이 문제도 모든 주요종교의 관심사항이다. 화해형 접근에서는 타 종교와의 화해와 협조를 강조한다.

 

8.7 인간의 종말 (Human Eschatology)
인간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과 죽은 후 삶이 모든 주요 종교의 관심사다. 제 4 장(기독교 인생관)에서 이 문제를 토의한바 있으나 좀더 자세히 토의 하고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질문을 한다. “나의 인생을 뒤돌아볼 때 과연 내가 잘 살았나?” “내 인생은 보람 있었나?”  “혹시 나도 모르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내가 죽기 전에 이 세상에 남긴 것이 무엇인가?” “내가 죽은 후 나를 어떻게 보나?” “내 영혼만 살고 내 몸은 완전히 썩어 버리는가?” “내가 죽으면 나의 꿈, 나의 공로, 나의 지성, 나의 관계, 나의 권세, 나의 영광이 이슬같이 사라지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기억할까?”  “ 내가 일평생 내 가족, 내 조국을 위해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죽은 후에 보상이 없을까” “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 남보다 열 배나 더 노력을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이 없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 종교의 주요 목적이다. 죽음 후의 삶에 대한 종교 혹은 철학은 다양하다. 우선 자연주의자들은 죽음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영도 죽고 몸도 죽는다는 이론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은 몸과 영을 분리하는 이중설이며 죽은 후 몸은 죽지만 영은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재생 (Incarnation)과 영원으로 흡수(Absorption into Infinity)된다는 것을 믿는다. 영을 아트만(Atman)이라 한다. 인생은 카르마(Karma)법칙에 따라 전개된다. 카르마 형태에 따라 영은 절대존재(Braham)와 합치면서 영원한 행복(Bliss)의 세계로 간다. 이러한 세상을 영원한 안식(Eternal Rest) (Moksha)이라 한다. Moksha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으로 돌아와 다시 삶의 고난을 받게 된다. 불교도 유사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이 세상에서 살 때  “좋은” 인생을 산 사람은 죽은 후 “극락” (Nirvana)으로 가서 영원히 행복한 영적 생활을 하게 된다. 사는 동안 제대로 “도”를 개발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 보다 열등한 존재로 재생(Incarnation)하여 고생한다. 도(道)는 7 개의 법칙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점성학(Astrol Projection)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하늘의 별제(Starbody) 안에 있다. 죽은 후 사람은 7 개 계층으로 된 하늘에 올라가 영적 생활을 한다. 그리고 영원 속으로 흡수된다. 아프리카의 토박이 종교에 따르면 죽은 후 5 세대까지는 유가족을 살펴본다. 5 세대 후에는 죽은 사람의 영은 영원히 사라진다. 서구에서는 임시죽음의 경험이 주목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 혹은 의료 수술 사고 때문에 잠깐 의학적으로 죽은 경험을 흔히 듣는다. 공통된 경험은 죽은 후 영이 몸에서 분리되어 하늘로 올라가다가 터널을 지나가기 전에 깨어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영을 동반하는 천사 혹은 기타 유형의 사자Messenger)가 있다는 이야기다.


앞에서 본 종교 혹은 믿음의 공통점이 있다면 죽은 후에는 영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이 이른바 영 위주의 종말론(Eschatology of Soulectomy)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전혀 다른 이론이다. 예수님의 보혈로 인간은 속죄되었다. 세례로 인해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함께 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활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창세를 의미한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은 죽은 자가 되었다. 죄 때문에 아담은 낙원동산에서 추방 당했다. 대가로 인간은 삶의 고난을 받게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 만약 아담이 선악의 나무열매를 먹지 않고 영생의 나무 열매를 먹었다면 인간은 영원이 살았을 것이다.  “ 이제 그 손을 내밀어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창세기 3.22)


하지만 우리 조상이 선악 나무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 살던지, 무슨 직업을 갖던지, 돈이 있거나 없거나, 권력자이거나 아니거나, 외모가 아름답거나 아니거나 우리인간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온갖 고난을 받게 된다. 이유는 원죄다. 따라서 죽음은 이러한 고난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죽음은 영생이다. 이들은 죽은 후 몸도 살아나고 영도 살아 남아있다. 몸은 영적 몸이 된다.  죽음은 무섭고 괴롭다.  그러나 믿음은 강하다. 믿는 사람은 죽은 후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한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 중 하나가 사람은 죽어야 살아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여,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 (고린도 전서 15: 36) 사도 바울은 선택 받은 사람들의 부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이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은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능력 있는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욕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고린도 전서 15: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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