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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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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Joseph Chung - Column
 정희수 칼럼



교체모형은 바르트(Barth)와 순복음 계통 신학자를 포함한 전통적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비 기독교에 대해선 한치도 양보도 할 수 없고 비 기독교를 기독교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모형이 가장 배타적 모형인 것은 분명하다.  디모데 전서는 누구나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으나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디모데 전서 2:4-5) 다시 말하자면 비 기독교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비 기독교 간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성취모형은 1962-1965년의 제 2 차 바티칸 (Vatican Council)후 거론된 신학적 이론이다. 핵심은 이렇다. 불교, 힌두교 등 비 기독교 종교에도 진리가 있고 성스러운 것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기독교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종교 와의 대화(Dialogue)가 가능하다. 대화를 통해 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대화의 목적은 예수님이 이들 종교인들의 구원을 성취하는데 있다. 이와 같이 성취모형도 비 기독교와의 타협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취모형은 교체모형 보다는 약간 개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상호모형의 핵심은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다른 종교에서도 구세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모형의 문제는 예수님을 전지전능하신 유일(Unique)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모형인 승인모형이 가장 개방적 모형이다. 즉 기독교의 우월성을 가장 부인하는 모형이다. 모든 종교는 구원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각 종교마다 스스로의 구원방법을 추구한다. 따라서 각 종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계평화 혹은 사회정의 등의 세계적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하고 협조하는 것이다. 4 개 모형 중, 이 모형이 가장 개방적이다. 앞에서 본 4 개 유형 중 교체모형이 가장 배타적 모형이라면 승인모형이 가장 포옹적 모형이다. 문제는 이 모형들을 뒷받침하는 기독교 신학적 근거이다. 우선 개방적 모형을 지지하는 신학적 근거는 다음의 분류다. 


즉 고백모형 (Confessional), 겸손모형(Kenotic), 상대적 성례모형(Sacramental or Revelation) 및 천국모형(Kingdom-centered) 이 이러한 모형이다. 이 모형은 기독교의 타 종교에 대한 개방성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고백형 모형에서는 기도교인이 비 기독교인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경험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비 기독교인의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솔직하게 신앙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불교인, 힌두교인. 이슬람 교인들도 자기들의 믿음경험을 이야기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종교간 대화가 가능해진다. 대화의 목적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충성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구절을 믿는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디모데 전서 2:5)  대화를 하되 피할 것은 기독교의 우월성은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겸손모형은 우리가 Kenotic하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비우는(Emptying) 것이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보자. “그 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면서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취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순종 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난 이름을 주셨다.”(빌립보 서 2:5-9)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본받아 기독교인은 비 기도교인을 대할 때 자신을 비우고 겸손한 자세로 대하여야 한다.


성례형 모형의 핵심은 우리 하나님은 한번만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고 문화 및 시기에 따라 다르게 보이신다는 것이다. “역사 속의 한 시점 혹은 한 문화 속 혹은 일정 수의 인간 요구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계시는 다를 수 있다. (What is reveled at one point in history, or in one culture, or in one set of particular human needs, can be revealed very differently, but just as appropriately in another culture or historical context.)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의 계시는 다른 방식으로 타 종교 속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천국형 모형에서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주요 세계종교들이 공통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세계번영, 사회정의, 세계평화 등 모든 사람이 다 잘 사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을 건설하는데 반대하는 종교는 없을 것이디. 반대하지 않으면 함께 할 것이다. “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다.” (마가 복음 9:40). 이 모형들은 우리 기독교인이 기독교에게 충성을 유지하면서 여타 종교에 대한 개방성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면 반대로 개방성을 유지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충성을 도모 하려면 어떻게 하나?  즉 타 종교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보일 때 기독교의 유일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개방성 충성은 다음의 모형을 포함한다. 즉 예수님 중심형 (Christocentric), 선지자 중심형(Prophetic) 화해형(Reconciliatory, not Acceptance)등의 접근이 있다.


예수님 중심형 접근에서는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구비하신 유일한 존재라는 것은 선포할 수 있다. 타 종교에서 그러한 분을 찾을 수 없다.  예수님은 온 세계 전체를 다스리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