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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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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Joseph Chung - Column
 정희수 칼럼



제한적이지만 인간은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 할 수 있다. 인간은 제한적이지만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 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 한다면 자비를 베풀 수 있다.
넷째,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또한 네가 행복하게 되도록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3) “너희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가까이 하라.” (신명기 13:4)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누가복음 5:5)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 겸손해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도록 하여라.” (마태복음 16:24)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분은 신실하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요한일서 1:9)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고백하고 끊어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는다.”(잠언 28:13)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남을 용서하는 것이다. “너희가 누구의 죄를 용서하면 그들은 용서함을 받을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든지 용서하면 나도 그렇게 한다. 네가 만일 용서 할 일이 있어 용서 하였으면,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할 것이다.”(고린도 후서 2:10)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옆에 계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는 것이다.  자기인생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신학자 배틀(W.C Placher, Essentials of Theology, 2003 안에 있는Michael Battle논문 PP. 280-295)은 디선먼트 (Discernment of God)라 한다. 이것을 번역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의식화”라 하겠다. 바틀은 이것을 이렇게 정의했다.  하나님 의식화란 일정한 현실에서 하나님을 능동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찾은 영적 활동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기독교 생활 속의 선택을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다. (Discernment as a spiritual act involves actively and consciously seeking God in a particular circumstance. From such seeking, the Christian life actively turns to the Holy Spirit within and without to confirm our choices) (P. 287)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찾고 있는 지를 알려면 다음의 질문을 한다. “내 인생이 삼위일체와 가까이 있나? 내가 과연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나?” “내가 하나님을 떠나 가고 있나?” “하나님이 내 인생에 참여하시고 계시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우리는 매일 수 많은 선택을 한다. 내 선택이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는 지를 알기 위해 다음의 질문을 한다. “나의 선택이 나의 인생 방향과 맞나?” “나의 선택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나?” 나의 선택의 진실성, 통일성 및 통합성이 있나?” “나의 선택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 일치하나?” 나의 선택이 내가 소망하는 영생과의 모순은 없나?”  “나의 선택이 기독교 전통과 조화가 되나?” 나의 선택이 교회가 보는 생활관과 일치하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우리가 어떤 선택 혹은 행동을 할 때 항상 하나님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틀은 기독교인 생활을 이렇게 정의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인생이란 인생 전체를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에서 이생의 어떤 때가 좀 더 좋은 공동체 구성과 예수님과 함께 하는데 가장 적합한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어떤 때가 고립된 이기주의와 파괴적 사회세력의 길로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The Christian life, I conclude, is the habit of viewing all of life through the eyes of faith, and in that faith-stance noticing the movement of the heart to determine which of the moments is leading to greater community and discipleship in Christ, and which of them turning one toward insular egos and destructive social force.) (Placher P.287-288)

8.5 이웃 사랑
8.5.1이웃의 정의
이웃 사랑의 첫 번째 과제는 이웃이 누구인가 이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이웃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는 너희 가운데 있는 본토인 같이 여기며 그를 네 자산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34) 신약에서 보는 이웃은 좋은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는데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된 것을 버려두고 가 버렸다. 마침내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가 버렸으나 한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에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가까이 다가서서 그의 상처에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그를 자기의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보살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