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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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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Joseph Chung - Column
 정희수 칼럼



목사는 설교문을 준비할 때 다양한 질문을 해야한다. 선택한 성경구절이 하나님과 그분의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 구절을 통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하시나? 무엇을하시나? 구절은 인간이 무엇이라고하나? 구절에서 어떠한 죄를 이야기하나? 이 죄에 대한 심판은 무엇인가? 약자를 괴롭히는자를 어떻게 보시나? 인간의 소요에 대해서는 무슨말씀을 하시나? 사랑에 대한 말씀은? 선택된 구절에 대한 교회입장은? 구절은 예수님을 어떻게 반영하나?

 

 설교는 성도들의 요구를 감안 해야한다. 성도 각자가 성전이다. 교회는 성도의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는 성도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다.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화 되므로 영생을 위한 준비를 시키는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따라서 목사는 성도들의 마음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Leonard Tubbs에 따르면 설교를 위해서는 성도의 비중은 성경의 비중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는 성도에게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램지(G.Lee Ramsey, Careful Preaching From Sermon to Caring Community)는 이러한 말을 했다. “설교전에 성도들의 마음을 듣는 목사는 성도들과 연결되는것이 아니고 그들을 위해 더 높은 수준(하나님)과 연결이된다.”(The Preacher who takes time to listen the congregation will reach for the people rather than at them.) (p.233) 설교를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계명을 더 열심히 수행하는 성숙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설교의 신뢰성은 설교가 어느정도 교회 밖 세상의 구원에 관심을 같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바르트(Barth)는 설교대상을 교회안에 제한한 신학자다. 그는 목사는 교회 밖에 있는 세상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했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목사는 성경만 가르치면 된다. 그러나 바르트후 신학자들의 의견은 정반대이다. 현대 신학자 대부분은 하나님은 모든피조물을 관리하신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서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면 세상 전체가 설교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밖에 있는 세상도 창조하셨고 구원하신다. 즉 하나님에게는 교회밖의 세상도 구원대상이다. 최근의 신학자들은 개인의 죄보다 사회의 죄-빈곤, 사회불의, 환경파괴, 뇌물, 약자착취, 인종차별, 정치의부패 등등-가 더 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면 사회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고 고쳐야한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패쇄적이고 소극적인 교회다. 한국교회는 자기교회의 성도만이 관심대상이다. 타교단의 교회는 물론 같은교단의 교회라도 가면 안된다. 예외는 있다. 필자가 존경하는 한국의 김모목사는 다른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를 많이 받으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더 심각한 것은 다른 교회예배에 참석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겁을 준다.
북미 한인교회도 패쇄적인것은 동일하다. 이웃교회의 목사의 말씀이 좋다해서 호기심에 어쩌다 참석하면 신우들의 불쾌감을 피부로 느낀다. 30년 이상 같은교회에 다니다가 다른 교회로 옮기면 적이 되고만다. 병태적 기현상이다. 사랑계명을 총체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이러한 잘못된 현상을 비판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더 기가막힌 현상은 교회밖의 행사는 모두 세속적이고 거룩하지 못한 행사라고 선언한 목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관여하시는 일은 다 거룩하다는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수까지 아시는 정도로 우리 일상생활에 참여 하신다. 우리를 포함한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하루12 시간 중노동을 한다. 언어장벽때문이 자녀들과 의사소통도 힘들다. 살아가기 바빠서 친구사귈 기회도 없다. 고독한삶을 살아야한다. 현지사회 적응은 보통 힘든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한인회에서 다양한 행사를하면 거룩하지못한 행사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말라고하는 목사가 많다.  오직 자기 교회만이 관심대상이다보니 성도들의 신앙이 클 수가 없다.

 

설교학에서 거론되는 화제 중 하나가 설교에 목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의 타당성 문제다. 테일러(Barbara Brown Taylor, The Preaching Life)는 목사자신의 믿음체험이 유익 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설교는 근본적으로 목사의 활약이다. 설교제목의 선택, 설교 조직, 목사의 목소리, 손 및 머리움직임 모두 설교효율성에 영향을준다. 하지만 램지(Ramsey)는 목사개인의 체험이 신학적 타당성을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하지 않을 경우 목사개인의 체험은 자가자랑 혹은 스스로의 테라피(Therapy)로 오해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그분의 목회에서 스타 (Star)가 아니었다. 한편 어떤 목사는 설교 중 농담을 하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타고난 휴머리스트가 아니면 삼가하라고 건의한다.

 

7.8.4 설교 양식
목사는 각각 자기자신에게 주는 이미지가 있다. 즉 양치기(Shepherd), 선지자(Prophet), 교사(Teacher), 고치는사람(Healer) 및 도움이(Enabler)등이 이러한 이미지이다. 자기가 양치기라고 생각하는 목사는 힘없는 양의 무리(교인)를 관리하는 다정한 지도자로 생각한다. 선지자라고 착각하는 목사가있다면 이는 비신학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신후 선지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