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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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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Joseph Chung - Column
 정희수 칼럼



 
 
퀘벡 경제기적 (Economic Miracle of Quebec) :한강의 기적과 Economic Miracle of Han River) 의 비교
한편 퀘벡주는 연금기금 (Caisse de depot et placement) 을 설립하여 리스크가 비교적 적은 산업에 투자했다. 반면에 종합 금융공사 (Societe general de financement)는 주로 리스크가 비교적 높은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기적도 정부 출자 공사의 눈부신 활약으로 가능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철광, 전기 에너지, 통신, 중공업 (Heavy Industries) 등의 전략적 분야에 정부 출자 공사를 설립 했다. 철광산업을 위한 포항제철, 통신 산업은 위한 KTC 등이 대표적 예다. 또한 공업화에 필요한 자금 조성을 위해 주요은행을 국유화하여 필요 자금조성을 했다
정부출자 공사의 역할은 해당산업의 육성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재 양성, 경영 기술 개발, 기술 개발 등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발도 포함 했다.
셋째 퀘벡주나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은 자유시장보다는 정부의 개발 계획에 따라 진행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개발은 1962년을 시작으로 5 년 마다 경제 사회개발계획에 따라 진행 되었다. 또한 10년마다 국토개발 계획을 통해 우리나라 인프라시설을 마련했고 국가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 시켰다. 뿐만 아니라 국토 개발 계획을 통해 균형적 지역개발은 도모했다. 퀘벡주도 당시 유행이었던 프랑스의 제시적 개발 전략 (Indicative Planning Strategy) 를 도입하여 국가 투자 공사의 리더쉽 아래 민간 기업들로 하여금 주어진 개발 목표 달성을 시도 했다. 퀘벡주의 개발계획은 우리나라와 비교 해보면 정부의 직접개입은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발 계획기관도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는 경제기획원 (Economic Planning Bureau: EPB) 이 5 개년 경제 사회 개발의 계획과 총괄을 했다. EPB의 구성 공무원들은 전문 지식, 애국심, 봉사정신 및 희생정신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이분들과 더불어 일을 했으며 이분들을 높이 평가한다.  퀘벡주의 개발 계획 주체는 상공부의 경제개발위원회 (Conseil economique du Quebec :OPDQ) 필자는 1970년대 OPDQ 의 자문 위원 이었다. OPDQ 는 고위 관료와 민간 산업 대표로 구성되어 퀘벡 주 경제 전체의 개발뿐만 아니라 퀘벡 주내 지역의 균형개발도 유도 했다. 또한 지역개발 기구로서는 BAEQ 가 퀘벡 동부에 있는 Gaspe 낙후 지역 개발을 계획했다. 본 기구의 큰 성과중의 하나가 공무원 교육이었다.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고위 공무원의 상당수가 BAEQ 출신이었다.
넷째,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면 계획 성과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인당 GDP 는 1962년의 $87 에서 1991년도의 $6,500 로 급증 했다. 즉 30년 기간에 75 배 증가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매년 2.5 배 증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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