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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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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Joseph Chung - Column
 정희수 칼럼



 

우리 교민이 경영하는 기업수가 600 이라 하면 1,200 개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들은 영세한 기업이다. 고용수가 100 명을 초과하는 기업은 없다. 우리가 퀘벡 사회에 주는 경제기여관련 이미지는 다음가 같다. 첫째는 부정적 이미지이다. 기업이민을 오게 하면 100 80명이 5 내로 지역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떠나는 이유 언어 장벽, 정보 부족도 있지만 한인회 같은 단체에 도움을 청하면 불친절하고 무능하다는 것도 이유다. 하나는 긍정적 이미지다. 고용창출은 빈약하지만 불어장벽을 포함한 어려운 상태에서 사고 없이 열심히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현지인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 I respect Koreans for their dedication to life.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우리의 경제적 기여에 대한 이미지는 « B » 정도라고 본다. 우리의 경제적 이미지 개선은 주로 개인과 경제단체(실협) 노력(95%) 달려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 사업의 다양화 기업체의 -규모화다. 이를 위해서는 실협의 활동범위를 확대해야 것이다. 상공회의소 같은 단체가 필요 것이다.

 

한인의 근면성과 교육열은 유명하다. 측면에서 100 만점  « A » 평가를 받는다.  한인회가 일은 별로 없다. 한편 한국부모들의 교육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교육 전문가도 있다. 학교 공부만 주장하는 결과 자녀들이 사회교재기술을 습득 못하여 사회생활 직장생활에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로보트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신세대 부모들이 이민함으로 점차적으로 개선 것이다.

 

이민 일세의 가장 심각한 이미지가 그들의 폐쇄성이라 하겠다. 평가는 낙제점 « E » 이다. 이민 일세 부모들의 상당 부분은 « 우리끼리 살자! » 라는 인생관을 주장 한다. 2007 3 3 한인 종합 회관 개관식이 있었다. 4 명의 현지 장관, 6 명의 국회 의원, 총영사관 대표, 한인 단체 대표, 많은 이민단체 대표들이 참석 가운데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기가막힌 사실은 어떤 노인이 « 우리끼리 하는 행사인데 코쟁이가 왔어? » 라고 불만을 했다는 것이다. 이민 일세들이 언어 장벽 다양한 이유로 이민 생활에 대한 불만족이 있을 있다. 하지만 이는 현지인 « 코쟁이 »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적응능력이 부진한 탓이다. 우리는 임시로 관광객이 아니다; 우리는 이민자다; 우리는 현지인들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야 한다.

 

이러한 폐쇄적 태도는 자녀들에게 위험한 배타적 심리구조를 주며 현지사회에서 생존하기 힘들게 한다. 어떤 분은 이렇게 반응한다. 우리 아이가 « 한국에 가서 취직 하면 되지요! » 이분은 40 한국을 생각 한다. 우리나라도 복합문화나라가 되고 있다. 외국인이 100 명이나 된다. 한국 기업도 다국화(Globalized)되고 있다.  다국화 되지 못하고 부모를 따라 폐쇄적 태도를 가진 자녀는 한국을 포함 세계 어디로 가나 취직하기 어렵다. 취직을 하더라도 진급하는데 불이익을 당한다. 따라서 폐쇄적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를 모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이민일세 부모들의 폐쇄성은 심각하다. 교민 단체장 위험한 정도로 폐쇄적 태도를 가진 분들이 있다. 한인회장의 경우는 한인회의 절대적 중요성 때문이 사람 이라도 폐쇄적인 분이 회장이 되면 된다. 문제를 해소 하려면 우선 개방적 사람이 한인회 회장이 되어 교민들에게 개방성이 현지사회 진출에 절대 필요한지를 설득 시켜야 한다. 노력의 90% 개방적 회장이 봉사하는(이끄는 것이 아니고) 한인회의 몫이다.

 

자녀들의 취직 진급을 포함한 직장생활은 개개인의 문제라 하겠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국에는 적응이 되지만 이민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민 집단, 특히 가시적 소수민족은 130 개의 이민민족과 현지인과 경쟁을 해야 한다. 자녀의 직장 생활은 개개인의 노력이 일차적 전략이지만 한인회 같은 대표 단체의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가 알아야 것은 퀘벡 사회에서는 취업의 75% 인맥 취업이라는 것이다.  인맥 취업이 주보다 심하다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이민민족마다 인맥을 조직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지인 뿐만 아니라 130 개의 이민족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

 

필자의 친구 자녀(P) 변호사가 되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려면 인턴을 해야 한다. 한인 변호사 인맥이 없다 보니 인턴을 곳이 없었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변호사를 소개했다. P 양은 변호사에게 연락을 마다 접수 인이 다양한 이유로 연결을 주는 것이다. 접수인은 만족 출신이었다. 필자는 1970년대 연방정부 주택/모기지 공사에서 자문역을 한바 있다. 진급 과정에서 동족 상관의 유무가 중요한 변수이었다.

 

한인 인맥은 실제로 전무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 인구(7,000) 적다. 둘째, 우리 민족은 대부분 자영업을 하여 노동 시장에는 인맥이 없다. 셋째, 바야흐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자녀들이 어리다. 넷째, 자녀 대부분이 맥길 혹은 콩코디아 대학에 진학하여 퀘벡 불어권 기업에 취직/진급하는데 한계가 있다. 퀘벡 기업들은 퀘벡의 정치적 문화적 언어적 문제의 본질을 알고 동참하는 사람을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