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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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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Joseph Chung - Column
 정희수 칼럼



2.2.2 의사소통

구직자가 갖추어야 할 두 번째 구직요건은 ‘의사소통’ 기법이다. 퀘벡 주내에서 취업을 원할 경우 퀘벡 주류사회 구성원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하는데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은 물론 불어구사능력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이란 ‘언어를 통한 문화의 소통’으로 보아야 한다. 아무리 유창한 불어를 구사해도 퀘벡의 문화와 퀘벡인의 사고방식을 모르면 의사소통의 효력이 떨어진다.

같은 불어표현이라도 대화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한인자녀가 유럽계 퀘벡인 친구에게 “Je suis un bon fils(나는 좋은 아들이야)”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 한인자녀는 “Je suis obéisant à mes parents(나는 부모에게 ‘복종’하는 착한 아들이다)”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퀘벡인 친구는 이 말을 “J’aime mes parents(나는 부모를 사랑해)”로 이해한다. 수직적 동양유교문화의 산물인 ‘복종’을 유럽계 퀘벡인은 ‘사랑’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차이다. 한인이나 퀘벡인이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같지만 문화차이로 인해서 같은 말이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문화를 모르면서 불어만 잘한다고 깝죽거리다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의사소통이란 다른 사고체제의 교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퀘벡인의 사고체제는 <퀘벡역사 + 퀘벡제도 + 퀘벡문화>의 결과다. 다시 말해서, 퀘벡인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려면 퀘벡의 역사와 제도, 그리고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어발음이 퀘벡역사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퀘벡은 불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지만 빠리식 발음을 한다고 해서 환영을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지난 1970년대에 프랑스인들이 와서 퀘벡사회를 경시한 태도에 대한 반발이 퀘벡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포자녀는 학교에서 불어를 배우고 역사와 문화도 배운다. 그러나 다른 퀘벡인 자녀는 그것을 가정에서 배우고 생활 속에서 몸에 익힌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1세가 퀘벡인의 사고체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동포단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퀘벡 이민국으로부터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받아서 한인 1세와 차세대에게 퀘벡인의 사고체제를 교육하는 사업이 그것이다. 
 
즉, 어느 민족계통이든 퀘벡인이 되어야 다른 퀘벡인과 의사소통이 원만해질 수 있고 취업이 쉬워 진다. 한국계 퀘벡인이 되는 것, 주류사회의 다른 퀘벡인과 소통하고 어울리면서 한국계 퀘벡인으로 사는 것만이 점차 강화되는 퀘벡민족주의의 와중에서 한민족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3 대인관계

구직에 필요한 다른 요건으로 ‘대인관계’를 꼽는다. 원만한 대인관계는 수평적 가치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한국계 자녀를 포함한 아시아계 1.5세에게는 ‘열등감’이 늘 잠재해 있고 이 열등의식은 수직적 사고방식의 파생물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동양의 수직적인 유교문화와 1등 주의 교육제도가 낳은 부작용의 산물이다. 이런 유교문화와 1등 주의 가치관이 주도하는 한국사회에서 성장한 1세 한인의 의식 속에는 항상 위에 있는 사람과 위에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과 아래에 있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잠재해 있다. 이런 까닭에 한국에서는 간장이든 된장이든 무조건 ‘장’이 되어야 한다. 이곳 동포사회에서도 “어떤 단체를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자”고 외치면 “장악하려 한다. 군림하려 한다”는 수직적인 해석을 내리고 극구반대한다. 퀘벡인은 물론이고 퀘벡사회에 적응해서 사는 동포가 볼 때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위계질서가 생명인 군대 같은 특정조직이나 의사 결정을 신속히 해야 할 특수상황에서는 이 버릇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문화와 다민족 화가 가속 중인 21세기의 한국에서 이 버릇은 ‘고약한 버릇’으로 점차 질타를 받아가고 있다. 하물며 이곳 퀘벡사회에서 퀘벡인에게 그 고약한 버릇이 통할 리는 만무하다. 한국에서 성장한 1.5세 자녀가 갖는 열등의식의 발로인 유교 문화적 유산은 대인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퀘벡사회에 적응하는데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이같이 수직적인 가정생활과 교회생활, 사회생활 속에서 성장한 자녀는 현지사회와는 다른 ‘수직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퀘벡인과의 원만한 대인관계 유지를 곤란케 하며 직장생활에서도 동료 간에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수석졸업’이 수직적 가치관의 좋은 예가 된다. 동포자녀는 대부분 똑똑해서 “누구의 자녀인 누구가 어느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신문기사를 가끔 본다. 한국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자랑거리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