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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숙-읽고 싶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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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un Eun Sook - Poem
 변은숙-읽고 싶은 시


겨울공화국

by 한카타임즈 조회 수:13 2017.09.01 14:26


겨울공화국 

 

양성우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가라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불끈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으드득 이빨을 갈고 헛웃음을
껄껄걸 웃어대거나 웃다가 새하얗게
까무러쳐서 누군가의 밑에 까무러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 체하고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기울이며
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다 머슴이다 허수아비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잠든 아기의 베게맡에서
결코 우리는 부끄러울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없네
물려줄 것은 부끄러움뿐
잠든 아기의 베게맡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만 보고
마디도 깊은 말을 나누지 않고
번쩍이는 칼날을 감추어두고
땅을 조심 조심 스쳐가는구나
어디선가 일어서라 고함질러도
배고프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어지럽지만 머무를 곳이 없는
우리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들을 모질게 재갈 물려서
짓이기며 짓이기며 내리모는 자는
누구인가 여보게 누구인가
등덜미에 찍혀 있는 우리들의 흉터,
채찍 맞은 우리들의 슬픈 흉터를
바람아 동지 섣달 모진 바람아
씁쓸한 칼끝으로도
지울
없다

돌아가야 것은 돌아가야 하네
담벼락에 붙어 있는 농담거리도
바보 같은 라디오도 신문 잡지도
저녁이면 멍청하게 장단 맞추는
TV 지금쯤은 정직해져서
한반도의 책상 끝에 놓여져야 하네

비겁한 것들은 사라져가고
더러운 것들도 사라져가고
마당에도 골목에도 산과 들에도
사랑하는 것들만 가득히 서서
가슴으로만 가슴으로만 이야기하고
여보게 화약냄새 풍기는 겨울 벌판에
잡초라도 한줌씩 돋아나야 할걸세
이럴 때는 모두들 눈물을 닦고
한강도 무등산도 말하게 하고
산새들도 한번쯤은 말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이 만약 게으르기 때문에
우리들의 낙인을 지우지 못한다면
차라리 과녁으로 나란히 서서
사나운 자의 끝에 쓰러지거나
쓰러지며 쓰러지며 부르짖어야 할걸세

사랑하는 모국어로 부르짖으며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들이 땅에도
싱싱하게 피어나게 하고
논둑에도 밭둑에도 피어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의 슬픈 겨울을
번이고 번이고 일컫게 하고,
묶인 팔다리로 봄을 기다리며
한사코 온몸을 바둥거려야
하지 않은가
여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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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박정희 정권 아래서 양성우시인이 이 시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위반건으로 복역하고, 전두환 정권까지 금시가 됩니다. 2006년 노무현정부 때 명예회복위원회에서 복직 권고 결정을 내렸으나, 학교측의 거부로 국어교사였던 시인은 끝내 다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밀의 숲'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 소개되어 정치가 개인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기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