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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한국인이 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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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g Byung Ho - China Review
 정병호-한국인이 본 중국


중국의 음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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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이 중국 요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의 대부분이 중국 음식은 아주 느끼하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초기에 중국 동포들이 많은 동북지방과의 교류가 가장 많았는데 겨울이 길고 추운 이 지역의 요리 특성이 기름을 많이 넣고 볶은 요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요리의 대부분은 광동요리와 사천 요리가 대부분이지요. 중국이 워낙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 음식도 지역에 따라 특색이 많이 달라집니다. 그 중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사회적으로도 공인된 요리는 광동요리, 사천요리, 산동요리, 강소요리, 절강요리, 복건요리, 호남성요리, 안휘성요리등 8가지가 대표적인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몇 가지 요리의 특색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광동요리는 광저우, 조주, 객가(서진 말년과 북송 말년에 황하 유역에서 점차 남방으로 이동한 종족으로 지금은 광동, 복건, 광서, 강서, 호남, 사천, 대만 등지에 거주하며 세계 각국에 중국 객가 협회가 조직되어 있을 정도로 결속력이 대단함)요리 등 세 지방 요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주 요리는 주로 바다와 강에서 나는 원료를 주축으로 야채와 과일을 원료로 하는 채소요리로 이루어지며 조리방법이 세밀하고 다양합니다. 객가요리는 육류를 주 원료로 하여 원료의 원즙과 원맛이 살아 있으며 요리를 만드는 방법에 아직까지 옛날의 정교한 조리 기술이 남아 있어 고대 중원의 풍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천요리는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독특한 맛을 자기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음식은 중국이 제일이며 맛은 사천이 제일이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 , 향기, 모양을 중시하며 주로 얼얼하고 매운맛을 특색으로 합니다. 기후가 습하고 흐린 날이 많아 음식으로 땀을 내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능을 대신하기 위해 매운맛이 발전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산동 요리는 황하유역의 요리문화를 대표하며 맑은 탕을 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산동반도 끝자락의 연해 도시는 해산물요리에 정통하고 바다의 신선한 맛을 잘 살리는 것이 특색이며 아름다운 음식은 아름다운 그릇만 못하다라는 말처럼 요리를 담는 그릇에 대하여 오래도록 연구하였고 동이나 은 등의 훌륭한 주방용기들을 갖추어 음식을 내놓는 것이 특색입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음식을 하늘로 여긴다)’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들의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붕괴한 왕조들은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은 이 말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연장선상에서 볼 때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것도 먹을 것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원인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당시 국민당 정권의 부패가 붕괴를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굶주린 인민들이부자들의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나눠 주겠다는 공산당의 약속에 동조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정책의 기저에도 인민들이 굶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의 한계를 깨닫고 돌파구를 찾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음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의식동원(醫食同源·의술과 음식의 근원은 같다)’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 말은 평소에 좋은 음식을 잘 골라 제대로 먹어야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의미인데 실제 중국인들은 감기 기운이 돌면 바로 마시던 차를 국화차로 바꿉니다. 바로 국화차의 감기 치료 효과 때문입니다. 특히 땀을 많이 흘리는 남쪽지방으로 내려가면약품=식품개념이 더 강합니다. 이 지역은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우리나라의 삼계탕과 유사한 보양식이 대부분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중에 소동파(蘇東坡)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강산에 대해 전해듣고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게 소원이로다[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라는 시를 쓰기도 했는데 지금도 자주 쓰이는 '맹목적(盲目的)'이란 말은 이 소동파가 즐겨 먹던 돼지고기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소동파가 기산(箕山)이란 곳에서 살 때에 하양에서 기른 돼지고기 맛이 매우 좋다는 소문을 듣고 하인을 시켜 몇 마리 사오도록 했는데 지독한 술꾼이었던 하인은 돌아오는 도중 술에 곯아 떨어져 자다가 돼지를 모두 잃어버리자 자기 돈을 몽땅 털어 가까운 농가에 가서 보통돼지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소동파는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일품(?) 돼지고기 잔치를 벌였고, 친구들은 당연히 하양에서 사온 맛 좋은 돼지고기려니 생각하고는 고기 맛이 일품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마침 밖에 촌로 몇 사람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동파가 나가보니 하인이 잃어버린 돼지를 한 마리씩 안고 있었다. 사실의 연후를 알게 된 소동파가 친구들에게 눈이 먼채로 음식을 먹었다고 하여 '맹목적'이란 말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당대 제1의 시인치고 자기도 같이 먹고 만족해 했을텐데 친구들만 장님이라고 뒤콩을 까신 행태는 어째 좀 많이 거시기 합니다.

 

역사에 진시황은 생선요리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끼니마다 반드시 생선요리가 올라와야 하는데 생선가시가 있는 것은 허용하지 않아 식사도중에 생선가시가 씹히면 요리사를 사형에 처했다고 하네요. 요리사들은 끼니마다 온갖 주의를 들여 세심하게 생선을 손질 할 뿐 다른 방법이 없어 완성된 요리가 상에 올라가고 진시황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옆에서 숨죽이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답니다.(지켜보다 심장마비로 죽은 요리사도 가시 때문에 죽은 요리사 만큼 많을 것 같습니다무자비~한 진시황!!) 어느 날, 그 중 한 요리사가 순서가 되어 진시황의 밥상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생선 때문에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서 화풀이로 무의식 중에 옆에 있던 칼을 들고 이 놈의 생선이 진시황이려니 하고 칼등으로 냅다 생선을 내리쳐버렸답니다. 마음속으로 진시황 대가리도치고 어퍼컷, 스트레이트, 똥침을 마구마구 놓다보니 웬걸, 생선뼈와 가시가 저절로 다 드러나서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생선 살만 남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빨리 올리라는 전갈이 왔고 진시황 생선마마에 화풀이를 하다가 시간을 놓치게 된 요리사가 급한김에 손을 오므려  둥근 모양의 완자를 만들고 끓는물에 던져넣고는 상을 올렸는데, 이 맛을 본 진시황이 생선완자의 연하고 부드러움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즐겨먹고 있는 생선완자의 유래이고 어묵 꼬치도 여기서 발전한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적지 않은 요리의 원조가 중국에서 비롯되었을 정도로 중국 음식이 가지고 있는 다양함과 그 안에 녹아있는 문화가 풍부합니다. 세상 사는게 다 먹고 살자고 사는건데(한카 발행인 가훈은 지쳤을 때 한 숟가락 더!’라고 했던가……^^) 이왕에 먹는거, 문화적으로다가 즐기실 수 있도록 몇 가지 유래를 적어보았습니다. ~알 먹고 자~알 사시는 건강하고 유쾌한 하루 하루 되시길 멀리서 수줍게 기원합니다.